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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리 기수 인터뷰

  • 운영자 | 2017-02-23 16:07
  • 조회수6340추천1

사소한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 이애리 기수 인터뷰 -





병가로 일년을 쉬었다. 최근 컨디션은 어떤가. 
 컨디션 만큼은 아주 좋다. 마치 제 2의 인생을 사는 듯 한 기분이 든다. 경주 기승 두수와 조교 두수는 많지 않아도 즐겁게 일하고 있다. 병가를 낸 이유는 심장 수술 때문이었다. 

 2015년 10월경에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 새벽에 눈을 뜰때마다 위화감이 느껴질 정도로 심장 박동이 이상했고 호흡이 곤란했으며 두근거림과 찢는 듯한 통증이 가끔 있었다. 부정맥이었다. 부정맥이라함은, 사람의 심장은 수축과 이완의 반복 작용을 하는데 수축이 되기 위해서는 전기적인 자극이 필요하다. 심장이 만들어내는 전기적인 자극의 전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규칙적이지 않게 되어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경우를 말한다. 심할경우 심장마비가 와서 죽을 수도 있는 상태이다.  

 아픈 사람은 자신이 아픈 곳에 대해 박사가 된다고 하는데 나역시 무한 검색으로 부정맥에 박사가 된 것도 같다. 부정맥을 치료 받기 위해 십수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심장에 자그마한 구멍이 나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멍 때문에 부정맥이 생겼나보다. 원인을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치료만 받고 원인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시한폭탄을 안고 살아야 했었다. 운이 좋았다. 

 선천적으로 심장에 구멍이 나있는 경우가 있는데 엄마 뱃속에서부터 구멍이 있더라도 태어나면 저절로 막히는 것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같이 그대로 구멍이 남아 있을 수 있고 몇십년을 모르고 살다가 나이가 들어 다른 장기들이 약해지면 심장의 구멍때문에 단명하는 상황이 많다고 한다. 부정맥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다행히도 심장의 구멍을 빨리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수술 날짜를 잡으려 했지만 의외로 비슷한 환자들이 많아서 석달 후로 예약을 잡아야 했다. 그때부터 석달간의 시간은 생각하기도 싫을 정도로 우울하고 슬픈 나날이었다. 하루가 일년처럼 길게 느껴졌고 맑은 날도 싫었고 흐린 날도 싫었다.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운 날이 절반이 넘을 것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심장 수술이라 더욱 무서웠다. 수술실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유서까지 써놨다.

 마침내 수술날이 다가왔다. 나를 안심시키려 한 것인지 생각보다 어려운 수술은 아니라고 했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다. 2016년 1월에 수술을 마치고 6개월간 약을 먹으며 안정을 취했다. 틈틈히 체력 관리도 하면서 복귀를 준비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인터뷰에 응할 수 있지만 정말 제 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살아있음에 감사드린다.         





16년차의 기수 생활이다. 
 어느새 1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수 생활을 하게 될줄은 몰랐다. 우연히 아버지의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16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지금까지도 꿈을 이어가게 만들어주셨다. 

 어려서부터 운동만 하고 자랐다. 6살때부터 우슈를 시작했고 내 성격과 잘 맞으면서 재미있었다. 고등학교까지 우슈를 계속하면서 국가대표를 꿈꿨다. 우슈로 일가견이 있는 이름있는 대학에 진학하려 했으나 아쉽게도 첫 실패를 맛봐야 했다. 재수를 준비하고 있을때쯤 아버지께서 신문의 공고문을 보여주며 넌지시 물으셨다. 운동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니 힘들면 굳이 우슈를 고집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고. 처음 접한 운동이 우슈이고 다른 운동을 해보지 못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시기적으로 권태를 느낄때여서 인지 새로운 변화와 도전을 하고 싶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원서를 접수했고 운이 좋게 바로 합격할 수 있었다. 우슈를 해왔던 것이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그것을 시작으로 20년동안 말을 타게 되었다.  

 교육원 동기인 이금주기수와 이신영조교사가 먼저 기수 데뷔를 했고 나는 부상으로 다음해에 기수로 데뷔를 했다. 여성기수가 없던때라 주목을 많이 받았지만 겉보기와는 다르게 여성기수는 생활하기가 힘들었다. 시설적인 것은 버틸 수 있었지만 편견은 견디기 힘들었다. 어디 여자가 경마장에 들어와서 어슬렁 거리느냐, 여자가 보이면 재수가 없다느니 마방을 멀리 돌아서 지나가라느니 하는 분도 계셨다. 얼마안돼서 그만 두신 분이다. 지금은 여자 후배들도 많이 들어왔고 편의 시설도 괜찮아져 생활을 잘들 하는 것을 보니 나름 뿌듯함을 느낀다. 

 16년을 뒤돌아보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많았지만 경마 기수를 선택한 것은 잘 했다고 생각한다. 우슈를 계속 했다면 지금의 나이정도면 한참 전에 은퇴하고 도장을 차렸던지 체육 선생님이 되어 있을 듯 한데 경마 기수를 하니 아직도 선수로 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루 하루를 경마 기수로 살고 있다는것에 만족하고 행복함을 느낀다. 





영화 '각설탕'의 대역 배우로 활약했다. 
 2006년 이었을 것이다. 배우 임수정씨가 주연으로 '각설탕'이라는 영화를 촬영하는데 대역 섭외가 들어왔다. 당연히 재미있을 것 같아 흔쾌히 응했다.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역시 영화는 아무나 찍는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보통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즐겁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 경마 관련 영화 중에서는 '각설탕'이 제일 재미있었던 것 같다. 

 '각설탕'의 주인공 대역을 할때쯤이 나의 기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출연 이후에 많은 분들이 기승 기회를 주셔서 기승 두수와 거기에 따르는 성적까지 가장 좋았던 해이다. MVP를 수상할 정도였으니 전성기가 맞는 듯 하다. 가끔은 그 당시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훨씬 더 열심히 그리고 더 잘 할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동안 나름 만족스러운 기승을 보이다가 한번의 큰 부상으로 하락세의 길을 걷게 되었다. 긴거리 레이스였는데 기승했던 마필이 코너에 진입하자마자 악벽을 부리며 급정지를 했고 낙마를 당했다. 등을 심하게 차였는데 뼈가 으스러졌다. 꽤 오랫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경마기수에게 부상은 아픈것을 넘어서며 기승 기회를 잃게 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부상이후 복귀하고 나서 얼마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몇년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생활도 벌써 7년이나 되었다. 시간은 정말 눈깜짝할새에 지나가는 것 같다. '각설탕'이라는 영화가 나에게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주었다. 이제는 또 다른 전환점이 필요한 시기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초조하거나 조급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최근에는 항상 즐겁고 심적으로 여유있게 지내고 있다.       





지금껏 기승한 마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필이 있다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경주와 마필이 있다. 나에게 첫 입상을 안겨 주었고 첫승까지 함께 해준 마필이다. 예전 33조의 '자연풍'이라는 마필이다. 지금도 그때의 감정이 기억난다. 

 첫 입상을 차지했을 때가 2002년의 겨울이었다. 기승하기로 되어있던 선배기수가 부상으로 변경되어 기회가 찾아왔다. 잘 모르는 마필이라 그냥 열심히 밀기만 했다. 비인기마였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었다. 발주도 잘 나왔고 앞선에서 경주를 풀어나갔다. 의외로 직선주로에서 걸음이 죽지 않으면서 첫번째 입상을 기록할 수 있었다.

 가장 잊혀지지 않는 첫번째 우승을 안겨 준 마필도 '자연풍'이다. 2003년 4월이었고 비가 왔던 날의 1800m 거리였다. 따라가다보니 고글에 모래가 묻어 앞이 전혀 보이질 않았다. 말만 믿고 한없이 밀었다. 결승선을 통과한줄도 잘 모를 정도였으니 우승을 한 것은 더더욱 모를수밖에 없었다. '자연풍'에서 내려오고 나서야 주위분들에 의해 첫승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의 감정은 지금 생각해도 복받쳐 오른다. 

 기수로 데뷔하고 나서 처음 기승했던 마필도 기억이 난다. 예전 33조의 '셔렘'이라는 마필이다. 기수 데뷔전이었는데 1경주였고 게이트 번호도 1번 이었다. '셔렘'은 인기마가 아니었지만 상태가 좋아서 발주만 잘 나온다면 좋은 성적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발주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긴장을 해서인지 오히려 완전히 늦발을 해버렸다. 그리고나서 추입으로 3착을 기록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경주였다. 

 첫번째 경주를 늦발로 시작해서인지 그 뒤로 일년여정도를 늦발만 계속했다. 동료들에게 늦발의 제왕이라 불리울 정도였다. 스트레스를 하도 많이 받아서 그런지 꿈에서도 늦발을 하더라. 그당시에 인터넷의 아이디가 '자당'이었다. 내가 기승했던 마필은 아니지만 그때쯤 발주가 가장 빨랐던 마필이 '자당'이었고 얼마나 발주가 빨리 나오기를 바랐는지 우러러보는 '자당'을 아이디로 했었다. 발주 때문에 일년이 넘는 시간을 고생했다.     

 심장 수술을 하고나서 복귀를 했고 28조의 '보은사랑'이라는 마필을 맡게 되었다. 능검을 괜찮게 받아놔서 데뷔전부터 내심 기대를 했지만 순발력에 비해 지구력이 아직은 좀 아쉬웠다. 하지만 오랫만에 경주를 기승해서인지 '보은사랑'에 기승하고 내려올때는 감회가 새로웠다. 다음을 향한 욕심도 생겼다. 이래서 경마 기수를 좋아 한 것이고 오랫동안 해온것이구나 라고 느꼈다.   





앞으로 기수로서 계획이나 목표는.
 예전의 목표는 100승이었다. 꼭 하고 싶었던 승수인데 아직 달성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어려울 듯 하다. 승수의 목표는 여자 후배들에게 맡기고 싶다. 어느 순간부터 승수의 목표 보다는 기승 자체에 의미를 두었고 완주에서의 보람을 찾게 되었다. 

 당장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놓지 않았다. 살아있음에 감사를 드리고 있는 중이고 차츰 장래를 고민해 볼 것이다. 올해들어 두번의 경주 경험을 해봤는데 역시나 경주에 출주 하게 되면 승부욕이 생기더라. 몇몇 분들께서 기승 기회를 주려고 하시는데 아직은 서둘지 않고 있다. 경주마에 기승했을때가 가장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욕심을 부리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준비 또한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지 준비가 가장 먼저이다.   





검빛팬들에게 한마디. 
 경마라는 특성상 팬들의 나이가 높게 형성 되어있다. 내가 아파봐서 더욱 신경이 쓰이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글을 읽으시는 검빛의 팬들께서는 지금은 건강하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건강 검진을 꼭 받아보셨으면 좋겠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이 약해지고 있을 수 있으니 미리 검사를 받아야 한다. 미리 발견한다면 훨씬 쉽고 빠르게 치료할 수 있다. 건강은 건강할때 챙기라고 하지 않았는가.

 일년을 넘게 쉬고 나왔는데 예시장에서 이름을 불러 주시고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 기억해 주시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울컥하며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거리가 있어 들키지 않은것 같아 다행이었다. 또 언제쯤 기승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기회를 얻는다면 힘찬 응원을 부탁드린다. 

 살아있음에 항상 감사하며 지내고 있다. 검빛의 팬들께서도 모든것을 제쳐두고 건강을 제일 우선시 하셨으면 좋겠다. 늘 건강하게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겠다. 감사합니다.  







  • 만배만벳 02/27 03:17
    이애리 기수 건강하세요 그리고 화이팅입니다
  • 인덕원 02/28 15:02
    애리야 힘내시고 화이팅!!!입니다
  • 포터2 02/28 15:16
    애리기수!홧~팅
  • 정 찬 03/01 15:18
    건강에 문제가 있었군요. 고생 많이 하셨을텐데 다행입니다. 지난번 보은사랑과 이애리기수 응원할려고 일찍 간다해놓고 가질 못했는데 아깝게 4착 했더라구요. 기냥 연식이나 사고 버리는셈 치고 3만냥 정도만 베팅할 생각이였는데...ㅋ
    '건도'라는 분은 애리기수 놓고 삼쌍, 쌍승, 삼복 구매하신다 하여 장난하는줄 알았더니 실제 베팅한 모양이더라구요.
    인터뷰도 잘 하시네요. 앞으로 좋은 말도 많이 탔으면 좋겠네요. 화이팅^^
  • 정 찬 03/01 15:18
    더욱 건강하시고 자주 예시장과 주로에서 얼굴 보여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