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춘식 기수 인터뷰

  • 운영자 | 2017-07-0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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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춘식 기수 인터뷰 ]     
깃털 하나로 바람이 어디로 부는지를 안다.


 

 30년 가까운 기수 생활이다. 과천 경마장의 산증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터뷰를 할때마다 경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피어난다. 반평생을 경마와 함께 보냈으니 추억이 오죽 많을까. 데뷔때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많은 것이 변했다. 강산도 변하는 세월이 세번이나 지났으니 당연하지만 가끔은 예전이 그리울 때가 있다. 

 1988년에 경마교육원 입소를 했다. 마지막 뚝섬 경마장의 입소였고 동기는 현재 부산에서 활동중인 김태경 기수만 남았다. 88서울올림픽의 영향으로 과천에 경마장이 생겼다. 승마대회를 과천에서 개최했고 마장마술이나 장애물경기가 넓은 경주로에서 치러졌다. 결승전은 종합운동장에서 열렸지만 과천 경마장의 좋아진 시설에 다들 탄성을 자아냈다. 

 88서울올림픽이 마무리 될 때까지 뚝섬 경마장에서 교육을 받았고 1988년도가 끝나갈 무렵 과천 경마공원으로 경마장을 옮겨 왔다. 달라진 것들이 많았지만 신인 기수였기 때문에 적응은 무리가 없었다.

 30년 가까이 오랜시간 기수 생활을 해왔는데 아직 선배들이 계시다. 김귀배기수, 김옥성기수, 정평수기수, 신형철 기수, 박태종기수까지. 다들 대단한 분들이다. 기수 생활을 유지하는 동안 함께 다치지 않고 즐겁게 일을 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마찬가지인데 슬슬 노후를 고민해야 할 나이이지만 기수에 대한 매력에 미련이 남아 쉬운 결정은 하지 못한다. 정년이 되어가는 분들은 같은 심정일 것이다.

 외길 인생의 단점인 허무함 이랄까. 할줄 아는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지만 후배들을 위해 길을 터주면서 점점 시대의 흐름에 따라야 한다는 참 미묘한 감정이 생기더라. 어떻게보면 이것이 순리대로 가는 방향이고 나의 선배들 역시 이런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체력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최근 컨디션은 어떤가.
 국민학교에 들어 가면서부터 운동을 상당히 좋아했다. 기수에 맞는 신체 조건은 타고 나야 하겠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것은 후천적이 크고 꾸준히 이어간다는 것은 인내가 필요한 것이다. 우선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체력 단련을 억지로 한다기보단 운동 자체를 워낙 좋아해서 지금까지 기수로 활동할 수 있는 것 같다.

 운동도 중독이 된다.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몸이 뻐근하고 쑤신다. 운동이 직업이 되었지만 예전부터 취미이자 특기였다. 다른 선배들도 기초 체력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꾸준한 운동이 아니면 젊고 혈기 왕성한 후배들의 근처도 따라가지 못하고 순치가 덜 된 경주마에게는 질질 끌려다녀서 위험한 상황까지 치닫을 수 있게된다.

 최근 컨디션은 매우 좋다. 고등학생 딸아이가 하나 있는데 공부도 잘하고 별다른 일 없이 잘 커주고 있고 가족들 전부 화목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남자는 자고로 가정이 편안해야 바깥일도 잘 풀린다는 말을 믿고 있다. 그만큼 정신적인 면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 자신의 컨디션이 좋다고 해서 다된것이 아니라 최근에는 기승 기회를 얻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앞으로 몇년이 될지 모르지만 체력이 닿는한 경마 기수로의 미련을 남기지 않기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는 경마 기수의 꿈을 아직도 키우고 있다.






 최근에 아쉬운 경주가 있었다.
 오랫만에 우승까지 차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 놓쳤다. 지난 5월 20일 15조의 '스페셜조이'에 기승했던 경주였다. '스페셜조이'는 6세의 마필이고 치우침이 심한 단점이 있다. 작년에 기승해 본 경험이 있는 마필이라 성격은 어느정도 파악하고 있었고 최근들어 컨디션이 확연히 좋아져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었던 마필이다.

 경주 당일의 컨디션도 좋았다. 초반에는 마필이 뛰려했지만 발주가 느려서 제어하며 후미권에서 차분하게 따라갔다. 코너를 돌며 '스페셜조이'에게 신호를 보냈다. 후미권에서 추진을 시작했고 직선주로에 들어서자 탄력이 나와주었다. 내측으로 치우치는 바람에 외측으로 제어를 하는데 앞에서 뛰던 마필들이 한두는 외측으로 한두는 내측으로 나의 진로를 가로 막았다. 제차 잡아주며 한템포 탄력을 늦췄다.

 '스페셜조이'의 힘과 탄력이 워낙 좋아서 순간 보였던 2두의 마필들 사이로 뚫고 나가려 했지만 또다시 앞쪽 우측에 있던 마필이 내측으로 기대는 바람에 추돌이 있었고 내측에 있던 또다른 마필에게 방해를 주었다. 다시 진로가 열려 막판 추진으로 목차의 준우승이었다. 진로 방해가 없었다면 충분히 우승까지 가능했을 경주였다. 너무 아쉽다.

 심의 경주였고 재결실에 불려갔다. 최초의 심의는 '스페셜조이'의 내측 치우침에 의한 잘못이었지만 재심의를 요청했고 카메라 앵글을 뒤쪽에서 보여달라 요구했다. 뒤편에서 영상 분석을 하니 내가 최초 언급했던 것과 같았다. '스페셜조이'의 치우침은 있었는데 방해를 받은 치우침으로 다른 상대에게 방해를 주었다.

 어찌됐든 내가 방해를 받아서이긴 해도 다른 마필에게 방해를 주었기 때문에 2일 간의 기승 정지를 받았다. 어쩔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목차로 우승을 놓친것은 너무나 아쉬웠다. 6세의 '스페셜조이'가 당시의 컨디션으로 경주를 다시 뛰기에는 편성도 그렇고 쉽지 않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것이다.




 대상경주의 우승 경험이 많다.
 오래전 일이다. 한경주 한경주 전부 기억이 나지만 기회가 많지 않은 지금 시점에서는 좋은 추억일 뿐이다. 후배들도 마찬가지인데 대상경주에 출전하는 기회조차 얻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 대상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은 보람되고 기쁜일이다.

 지금은 특별경주를 표시해주지 않아서 대상경주만 말씀 드리면 총 9번을 우승한 것 같다. '통소문' 마필을 시작으로 '블랙킹'과 두번의 우승을 함께 했다. '대해'라는 마필로 '스포츠조선배' 대상경주 우승을 함께 했다. '스트라이크테러'라는 마필과 대상경주 두번을 우승했고 '해암장군'과는 '코리안오크스' 대상경주와 '농림부장관배' 대상경주라는 굵직한 대상경주를 우승할 수 있었다.

 2004년 '문화일보배' 대상경주에서는 '선두타자'라는 마필과 함께 우승을 차지했다. 앞으로 대상경주의 출전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찾아온다면 다시한번 우승의 희열을 느껴보고 싶다. 이런 희망과 욕심이 생길때면 역시 반평생 기수 생활을 하는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껏 기승한 마필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필이 있다면.
 인터뷰를 할때마다 말씀 드리는 마필이 한 두 있다. 20조의 '블랙킹' 마필이다. 'SBS배' 대상경주와 '마주협회장배' 대상경주에서 함께 우승을 차지했던 마필이다. 우승을 함께 한 다른 마필들도 많지만 유난히 지금까지 가장 좋아했던 마필은 '블랙킹'이다.

 '블랙킹'은 전형적인 추입마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항상 후미권에서 추입을 시도했고 상대 마필들과 아무리 격차가 벌어졌어도 믿음이 생겼던 마필이다. 지금은 최후미권에서 추입을 시도하면 재결실에 불려간다.

 예전에는 경주마의 각질대로 전개를 펼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선행형 마필이 앞선을 장악하고 선입형과 추입형 마필들이 따라가며 직선주로에서 각축을 벌였다. 하지만 요즘은 무조건 앞에 나가야 되고 능력 좋은 마필들이 선두권 전개를 펼치니 따라가다 끝나는 상황이 많다. 초반에 벌써 결과가 드러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다. '블랙킹'은 그런면에서 더욱 생각이 많이 난다. 요즘엔 보기 힘든 최후미 추입력은 보는 사람도 그렇겠지만 기승한 사람은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장기적인 계획은 계속 고민중이다. 나중에 기수를 그만두고 노후를 생각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고 당장 그만두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아직 기수이고 더 달리고 싶다. 지금까지 함께 했던 경주마들과 떨어지고 싶지 않다.

 한 10년 전쯤에 기수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다른 일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고 많은 고민을 했었다. 내가 절에 다니는데 당시 스님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스님은 대뜸 지금의 직업이 천직이니 다른 일은 눈길조차 주지 말라 하셨다. 지금까지 기수로 남게 된 이유 중에 한가지이다. 신인 시절 5,6년만 하다가 때려치자고 마음 먹었던 것이 어느새 30년 가까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천직일 수도 있겠다. 

 앞으로 기수 생활을 길게 보고 있지는 않다. 대상경주도 우승 해보고 싶고 400승도 해보고 싶고 5000전도 뛰어보고 싶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어 기수 생활로만 만 30년을 채우고 떠나려 한다. 지금 생각 같아선 3년만 더 기승하고 노후를 준비할 계획이다. 사람 앞일이야 아무도 모르겠지만 현재는 그렇다.




 검빛팬들에게 한마디.
 갈수록 기승 기회가 줄어 드는데도 기승 할때마다 응원해주시는 팬들이 계셔서 깜짝 놀랐다. 몇십년이 지나도 한결같은 팬들이 있어 지금까지 기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또 한가지의 이유이다. 앞으로도 꾸준한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응원의 힘은 능력 이상을 발휘하게 해준다.

 검빛은 가장 많이 애용하는 사이트이다. 팬들께서도 자주 접속하셔서 좋은 글들 많이 올려주셨으면 좋겠다. 장마와 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 하시고 항상 웃는 날들만 계속 되길 기원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