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던댄서]'당대불패'와 '솟을대문'의 생산자, 김종식 마주를 만나다

  • 운영자 | 2011-05-0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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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서울과 부경의 오픈 경주로 펼쳐진 제 23회 뚝섬배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명실상부 최강의 국산마로서 위용을 떨친 당대불패. 그리고 그보다 2주 앞서 열린 KRA 컵마일에서 우승을 차지해 올해 삼관 경주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솟을대문.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두 경주마는 부산경남 경마공원 소속이라는 것 외에도 아주 특별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김종식 마주에 의한 걸작품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솟을대문의 우승 후 그의 부마인 메이세이오페라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 김종식 마주가 몇 년 전에 작성해 놓은 글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 길지 않은 글이었지만 그가 경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한국 경마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현재 한국 경마 발전의 초석을 다지기 위해 누구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종식 마주에게 생산과 육성 등 한국 경마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어 만남을 요청하였다. 뚝섬배에 출전하는 당대불패를 응원하기 위해 서울 경마공원을 찾은 그는 젊은 경마팬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고 경주에 앞서 귀중한 시간을 내주었다.



솟을대문의 KRA컵마일 우승 축하로 시작된 인터뷰는 자연히 그의 부마인 메이세이오페라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메이세이오페라는 일본 지방 경마 출신으로, 뇌수술로까지 이어진 큰 부상을 극복하고 지방 경마 소속으로는 최초로 중앙의 G1 경주를 정복한 전설적인 경주마다. 이런 대단한 경주마가 한국으로 들어온 데는 복합적인 사연이 있었다.

우선 그의 자마들이 극단적으로 모래 주로에서만 성적을 거두는 까닭에 잔디가 주류인 일본에서는 씨수말로 명성을 얻지 못했다. 경주 능력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혈통도 생산자들에게 외면을 받은 이유였다. 설상가상으로 마주의 사업마저 순탄하지 못하게 되면서 그가 소유하고 있던 경주마들을 모두 처분해야하는 상황에 이르렀는데 다른 경주마와는 달리 소중한 추억을 안겨 준 메이세이오페라만은 곁에 두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하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업 악화에 따른 여파가 메이세이오페라에게까지 미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다른 곳으로 피신을 시켜야만 했고 이때 한국행을 도운 것이 바로 김종식 마주였다.

비록 지방 경마를 대표하는 스타였지만 일본에서 피우지 못한 영광을 한국에서 재현해보자는 측근의 목소리도 한국행을 도왔다. 결국 일본 최고의 더트 경주마였던 메이세이오페라는 마주의 사업 상황이 좋아지는 대로 일본으로 돌려보낸다는 전제 하에 한국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3년간 임대를 약속했으나 아직 마주의 사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까닭에 지금까지도 한국에서 활동 중이다. 요즘도 일본의 취재진이나 경마팬들이 제주도를 방문해 메이세이오페라를 보고 가며, 수시로 전화를 해 안부를 묻는 팬도 있다고 하니 그가 보여준 저력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듯했다.

실제로 일본에선 2월에 열리는 도쿄윈터프리미엄 경주에 역대 2월 스테익스 우승마 중 하나의 이름을 붙이기 위해 팬 투표를 실시하였는데, 거기서 최다득표를 하여 작년부터 메이세이오페라 메모리얼 경주로 열리게 되었다. 넓은 가슴과 무거운 주로에서 더욱 빛을 내는 다리, 그리고 5세가 넘어서까지도 활약이 가능한 내구성은 모두 한국 경마에 적합한 부분이었는데 첫 자마군인 솟을대문이 삼관 경주의 타이틀을 거머쥐며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었다.

(솟을대문은 현재 코리안더비를 준비하고 있는데 KRA컵마일에서 기승했던 우찌다 기수가 서울 경마공원에서는 기승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일본 경마 관계자에게까지 부탁을 해서 간신히 설득했다고 한다.)




<천황상과 홍콩컵 우승마인 '아그네스디지털(アグネスデジタル)'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김종식 마주가 자랑하는 또 다른 씨수말은 당대불패의 부마인 비와신세이키다. 일본에서 몇 년간 포티나이너의 자마를 찾아 헤맨 그가 처음에 낙점한 말은 유토피아였지만 소유주 측이 3억엔에 달하는 높은 몸값을 원하는 바람에 꿩 대신 닭으로 비와신세이키를 데려와야 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경종마협회(JBBA)의 이마하라 부회장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후에 유토피아가 셰이키 무하마드의 고돌핀 사단에 400만불에 팔린 사실을 상기하면 김종식 마주의 안목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비와신세이키'>

대종마 미스터 프로스펙터의 대표 자마인 포티나이너는 경주마로서 빼어난 활약을 보이며 2세마 챔피언에 올랐지만 은퇴 후 번식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결국 1995년 1000만불에 팔려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이듬해, 미국에 남겨둔 그의 자마인 에디터스노트가 벨몬트 스테익스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골드피버와 디스톨티드휴머 등이 맹활약을 펼치며 포티나이너가 북미 리딩사이어 1위에 랭크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다. 미국의 경마 관계자들은 곧바로 3000만불에 역수입을 제시했지만 일본에선 이를 거절했다. 비록 잔디 적성이 아닌 탓에 일본의 주류 씨수말이 되지는 못했지만 모래 주로에서는 유토피아와 비와신세이키, 마이너셀렉트 같은 대물들을 내놓았다. 비와신세이키는 한국에서 선호하는 넓은 가슴을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포티나이너의 유전력을 전승하고 있음을 당대불패를 통해 증명해 보였다.

자신이 직접 공수해온 씨수말의 자마로 2년 연속 클래식 우승마를 배출한 김종식 마주는 현재 가장 훌륭한 생산자로 꼽히고 있다. 그만이 가지고 있는 생산 방식이 궁금해져 현재 계획하고 있는 혈통 배합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그는 과거에 어리석었던 자신의 생산 방식에 대한 이야기로 답변을 대신했다.

김종식 마주는 생산을 시작한 후, 약 15년간을 혈통 맹신주의에 빠져 살았다고 밝혔다. 혈통이 경주능력을 확정짓는 것이라 믿고, 좋은 배합의 경주마를 생산해 비도 한 방울 안 맞힐 정도로 귀하게 키웠다고 했다. 하지만 해외를 자주 다니면서 깨달은 것은 혈통보다는 육성이 훨씬 중요하다는 점이었다. 혈통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육성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에서의 혈통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경주마는 어릴 적부터 목장에서 마음껏 뛰어놀아야 더욱 튼튼한 다리를 가지게 되고 더불어 경주마로서의 능력도 향상된다고 했다. 물론 방목을 하면 근육에 손상이 생기거나 골절을 입어 죽음에 이르기도 하지만 근육이 회복되는 과정에서 더욱 튼튼한 다리를 갖게 되기 때문에 이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많은 생산자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망아지를 한 두도 빠짐없이 경주마로 만들기 위해 가급적 마방에 두고 부상 없이 성장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는 전체적으로 경주마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했다.


<푸른목장>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주마의 질적 발전에 가장 시급한 것은 후기 육성 단계라고 했다. 현재 마사회에서 구축하고 있는 육성 목장은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도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무용지물이라 했다. 일본에는 250개를 상회하는 트레이닝 센터가 있고 전체 경주마 중 80% 이상은 이 단계를 거치는데 국내에는 단 한 개뿐인 곳도 상태가 이러하니 경주마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드림 트레이닝 센터를 개장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고 지난해에 1기 육성을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생산자들과 마주들의 호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고 한다. 많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추가적으로 육성을 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반응이 대다수였고 해외에서 공수해온 조련사들에 대해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후기 육성은 한국 경마의 수준이 발전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분야다. 해외의 경우에는 트레이너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정도로 그 중요성이 잘 알려져 있다. 후기 육성을 거치면 능력 향상과 함께 악벽도 완화되어 경주마로서의 수명이 늘어나고 기수에게 부담되는 위험도 감소하게 된다. 이는 결국 수준 높은 경마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마팬들의 만족도 또한 상승되는 효과가 있다. 조만간 중국에서도 베팅이 시작될 것이고 중동에서의 관심도 급증하고 있는 만큼 세계의 시장 규모는 자꾸 커져 갈 것인데 한국은 종마조차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3류 경마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못하고 있다.



<김종식 마주의 꿈은 '시크릿테리엇' 같은 경주마를 생산하는 것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국내 경주마의 부가가치를 키우기 위해선 종마로서의 활용이 필요한데 아직까지는 비싼 수입 씨수말들에 밀려 고객 확보가 쉽지 않다. 김종식 마주도 개인적으로 당대불패를 씨수말로 활용하고픈 욕심이 있으나 많은 생산자들이 국내 경주마에 대한 편견이 심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부계와 모계의 혈통 모두 괜찮기 때문에 기대치는 충분히 있지만 해외에서 들여온 마사회의 종마들이 시장을 점령하고 있어서 국내 경주마들에게는 종마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해외 경마의 경우에는 경주마로서의 가치보다는 은퇴 후 종마로서의 가치를 더 중요시한다. 그래서 더비나 브리더스컵에서 우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상금이나 타이틀보단 종마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도 이제는 부가가치가 큰 종마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할 필요가 있다. 단지 경주마로서 벌어들이는 상금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거대한 부가가치를 지니고 있는 종마로서의 활용까지 내다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한다. 세계무대에 발맞춰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국 경주마의 전체적인 질적 향상이 요구된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마주와 생산자, 그리고 마사회의 노력과 도전 정신이다. 일본이 올해 두바이 월드컵에서 우승을 거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세대를 거치며 기초를 다지고 다져 완성한 결과물이며 심지어 이 또한 발전 과정의 한 부분일 뿐이다. 국내에서도 그 기초를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 후기 육성의 중요성 인식과 국내 경주마의 종마 활용 확대라고 생각한다. 일본 경마의 판도를 바꾼 선데이사일런스가 만약 한국에 들어왔다면 단지 한 세대를 대표하는 리딩 사이어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뚝섬배 시작이 다가와 인터뷰를 급하게 마무리해야만 했다. 김종식 마주는 현재 자신이 추진하고 있는 후기 육성을 정착시키는 일이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고 하였다. 그래도 경마 이야기를 하면 금방 눈에 빛을 띠고 행복해하는 그의 표정은 경마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바쁜 일정 중에도 시간을 내준 김종식 마주와 자리를 마련해준 마주협회 홍보팀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출처:노던댄서님의 "아름다운 질주"
(http://blog.naver.com/dokin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