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의 조건

  • 최고봉 | 2008-10-23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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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경주 출주하는 모든 경주마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모두 우승을 원하지만 우승하는 말은 단 한 마리다. 단 한자리를 놓고 7두에서 14두까지 출주마 전부가 경쟁을 하는 구도이다. 경주가 끝나면 그 목표를 달성한 말은 오직 한 마리이고 나머지는 모두 훗날을 기약하면서 아쉬움을 달래야 한다.

복식 베팅을 위주로 하는 경마팬이야 2착도 우승과 진배없다. 하지만 마필을 소유한 마주나 마필이 벌어주는 상금으로 수입을 올리는 조교사, 기수의 입장에서 보면 우승과 2착과의 차이는 천양지차다. 국산3군의 경우 1위마는 대략 3010만원을 상금으로 받는 반면 2위마는 대략 1249만원을 상금으로 받는다. 우승마와 2착마의 상금 차이가 거의 3배가 되기 때문에 2착보다는 우승을 더 원한다고 보면 된다.

조교사 입장에서는 자신의 마필이 능력이 월등해서 쉽게 우승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능력마보다는 어중간한 마필이 많을 것이다. 평범한 말로 우승을 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야 한다. 우선 상대가 강하지 않아야만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매주 출마 투표장에서는 눈치작전이 심하게 될 수밖에 없다. 같은 군의 경주가 한주에 몇 개씩 있기 때문에 강한 말을 피해서 출주하면 그만큼 우승확률이 높아진다. 어떤 주는 1군 경주에 너무 강력한 마필이 나오면 다른 마필들이 출마투표를 기피해서 7두를 간신히 채워서 경주가 성립되기도 한다. 출주해봤자 우승을 못할테니 강한 넘을 피해서 출전을 한주 미루기도 한다.

이렇게 강한 말을 피한다고 우승이 바로 예약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고만고만한 마필들 중에서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전개가 수월하게 풀려야 한다. 선행 승부를 해야 하는데 선행마가 많아 초반에 경합이 예상되거나 게이트가 외곽이라서 선행을 못받을 가능성이 있다면 또 다시 승부를 미뤄야할 경우도 있다. 승부를 해도 입상이 불확실하게 되면 조교사들은 선택에 고민을 하게 된다. 모처럼 만만한 편성을 만났는데 외곽이라도 여기서 승부를 보느냐 아니면 다시 최적의 승부조건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것이냐 하는 것이다. 훗날을 기약하다 보면 강자 피하고 좋은 게이트 배정 받기를 또 지루하게 기다려야 한다. 어떤 경우 6개월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10월 18일 토요일에 2번마 한혈유성이 여유 있게 우승을 했다. 9전만에 첫 입상을 우승으로 장식하면서 복승식 29.4배가 나왔다. 외곽의 인기 1위마 청천천하가 3위로 밀리면서 고배당이 나왔던 것이다. 2번마 한혈유성은 4경주전 7월 6일에 1번 게이트에서 선행으로 승부를 했었다. 결과는 막판에 덜미 잡히면서 3착을 했다. 그러고는 삼세번을 후미에서 해찰을 하면서 기회를 엿봤다. 모두 게이트가 10번, 11번, 9번으로 외곽을 배정 받자 아얘 승부를 포기하고 뒤에서 추입 연습을 하면서 걸음만 재보고 있었다. 특히 전경주 9번 게이트에서 초반에 나오는데 전혀 추진을 하지 않고 곱게 잡고만 나왔다. 최후미에서 추입을 하는데 탄력이 붙으면서 6착까지 올라왔다. 그날도 초반부터 의지를 보였으면 2착도 가능했지 싶었다. 그러나 이말은 인코스에서 선행을 받고도 3착으로 승부에 실패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외곽에서는 연거퍼 승부를 하지 않았다. 절치부심 확실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다 지난 10월 18일 2경주에서 오랜만에 2번 게이트를 배정 받았다. 휘휘 둘러보니 편성이 아주 허접해서 선행만 받으면 우승할 확률이 아주 높아 보였다. 필자는 이 경주를 예상하면서 선행을 거의 확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삼세번을 후미에서 있던 넘이 초반부터 강력하게 치고 나가면서 선행을 받더니 직선에서도 여유 있게 차이를 벌리면서 우승을 했다. 한혈유성은 선행 승부를 위해서 인코스를 배정 받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말이 우승하려면 승부할 조건이 갖춰줘야만 성공할 확률이 높다. 혹자는 한혈유성이 외곽 게이트에서 삼세번이나 선행을 안 받은 것을 가지고 승부기피라고 비난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최적의 조건에서 최선의 효과를 보려고 하는 조교사의 작전은 정당하다고 본다. 그 부분도 경마의 한 속성으로 받아들이고 조교사의 입장이 되어서 최적의 승부조건을 추리하는 쪽으로 습관을 들이는 게 낫다. 승부의 조건을 잘 연구하다보면 적중하는 경주가 차츰 많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