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 최고봉 | 2008-11-0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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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민중의 불안 심리가 극에 달할 경우 그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세의 마녀사냥이 그러했고 미국의 매카시 선풍이 그러했다. 동경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민심이 흉흉해지자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풀었다는 소문이 급속하게 퍼졌고 그 결과 수많은 우리 동포가 피해를 입었다. 미국에서 흑백 갈등으로 LA폭동일 일어나자 이게 다 한국인 탓이라는 이상한 기류가 생기더니 급기야 한인 가게가 공격의 대상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남을 탓하는 제일 큰 이유 중 하나는 현재의 불안이나 불만을 남에게 화살을 돌림으로써 해소하는 것이다. 경제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누구 탓에 이렇게 됐다고 하면서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전 정권에서는 집값 폭등이 모두 노무현 대통령 탓이라고 비난했었다. 당시의 부동산 폭등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전 세계적인 저금리가 주요인이었다. 최근에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불황의 공포가 한국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원인을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이 잘 못해서 그렇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그게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지 어찌 이대통령과 강만수 장관 때문이겠는가 하고 반문하면 한 걸음 후퇴해서 이 두 사람이 안 그래도 될 상황을 입을 잘못 놀려서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제가 어찌 볼 품 없는 두 사람의 입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겠는가? 그들을 비난하는 사람조차도 그리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비난을 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하다못해 초등학교 시절 소풍만 가면 비가 왔는데 그럴 적마다 학교 소사가 학교에 사는 구렁이를 잘 못 죽여서 그렇다는 얘기를 했다. 불가항력이던 천재지변을 학교 서무직원에게 책임을 다 뒤집어씌우고 소풍을 망친 짜증나던 동심을 위안 받았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 말고도 나에게 잘못이 있는데도 남을 탓하는 경우가 있다. 잘되면 내 탓이고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칭찬은 나에게 돌리고 비난은 외부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수업시간에는 자고 집에 오면 게임만 하는 학생이 성적이 부진하면 머리가 나빠서라고 쉽게 대답한다. 부부가 펀드 투자를 하면서 이익을 내는 경우는 괜찮지만 손해가 날 경우 왜 그때 팔지 않았느냐고 서로 비난을 한다. 손실을 현실화 시키는 게 싫어서 오르겠지 하고 암묵적인 합의를 하고 가져가놓고도 나중에 손실이 커지면 그때 내가 팔라고 할 때 팔지 않았다고 비난한다.

경마에서는 남의 탓을 아주 많이 보게 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예측이 틀릴 때마다 기수와 조교사를 비난하면서 다시는 너에게 베팅하지 않는다고 다짐한다. 그러다 보니 전기수와 전조교사를 비난하게 되어 더 이상 베팅할 기수나 조교사가 없어졌다. 그래서 이제 경마를 그만두나보다 생각했는데 지금도 씩씩하게 베팅하고 심하게 욕을 퍼 붓는다. 경주후 게임을 분석해보면 의심가는 경주보다는 정상적인 경주가 훨씬 많다. 대부분의 경주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실력이 없어서 못맞출 뿐이다. 그런데 자신의 실력이 모자라서 예측이 틀렸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경마 20년 한 것을 유일한 자랑으로 삼아서 떠들고 다니는 자아가 용납을 못한다. 그러다 보니 기수가 안가고 조교사가 승부를 기피했다고 욕을 하면서 위안을 삼는 것이다.

설령 야바위 게임이 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그 야바위를 한 사람도 잘 못이겠지만 그런 야바위 게임을 알고 들어간 사람은 잘못이 없을까? 처음에는 야바위인지 몰랐다 치자. 그렇다면 왜 똑같은 사기를 두 번 세 번이 아니라 평생을 당하는가? 솔직하게 자신이 탐욕에 눈이 멀어서 야바위임을 알고 있지만 거기서 한건 하려다가 자신이 거꾸로 당했다고 인정하지 않는가? 자신이 야바위마저 잘 알고 있어서 저들이 농간을 부려도 충분히 내 실력으로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고 게임에 임했다는 사실을 쏙 빼 놓는다. 정상적인 게임이면 이길 수 있었는데 저들이 농간을 부려서 졌다고 주장한다. 만약 그것이 야바위 게임이라면 처음부터 참여하지 않았어야 마땅하다. 야바위 게임은 사기이기 때문에 절대로 이길 수 없고 따라서 무조건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참여를 하고서 참여한 자신이 어리석어서 게임에서 졌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남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남을 손가락질 하면 손가락 한 개는 표적을 향하지만 나머지 손가락 세 개는 자신의 심장을 향한다고 한다. 자신에게는 아무런 잘 못이 없고 남에게만 잘 못이 있다라고 주장하면 심리적으로는 마음이 편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자신의 책임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개선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고 다음에 똑 같은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또 다시 남의 탓으로 돌리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라고 용기를 낼 때 비로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것이다. 경마건 주식이건 다 자신의 책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