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함정

  • 최고봉 | 2009-02-18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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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경마팬들은 적중을 위해서 많은 연구를 한다. 경마에서 패배를 하면 자신의 공부가 부족했음을 인지하고 더더욱 경마연구에 매진한다. 하지만 시간투자에 비례해서 적중률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서 고민이다. 오히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잘 맞추는 게 아니라 더더욱 적중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당혹해 한다. 초보시절에는 고배당도 제법 잘 맞추다가도 마력이 쌓이면 오히려 적중률이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외국의 예이지만 한 마권업자에게 실험을 했다고 한다. 마권업자에게 말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늘려 제공하면서 어떤 말이 경주에서 이길지 예측해보라고 했다. 예측할 때마다 자기의 예상을 얼마나 자신하는지도 말하라고 했다. 정보의 양이 늘어날수록 예측의 정확성은 떨어졌지만 자신감은 점점 더 커졌다. 사람들은 정보가 많으면 더 잘 판단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지식환상에 사로잡히기 쉽다. (이용재, 2008, 탐욕과 공포의 게임, 지식노마드)

우리 속담에 모르는 게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는 말이 있다. 많이 안다고 해서 꼭 좋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적게 알더라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지식의 함정이라고 정의한다. 이 함정에 걸리면 침식을 잊고 경마공부에 매달리게 된다. 경마에 관한 지식을 많이 쌓을수록 승리할 수 있다고 믿어 경마에 대해 열공을 하지만 결과는 항상 패배로 끝나기 일쑤다.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이 공부가 모자라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더더욱 공부에 매진하게 된다. 공부를 많이 했으니 자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충만해지고 자신감만큼 더 많은 자금도 투입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자신의 확신과는 정반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자기확신이 도가 지나치게 되면 자신이 틀렸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경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경우까지 있다. 공부한 결과 분명히 이 말이 왔어야 되는데 승부를 하지 않아서 못왔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경마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더 공부할 것이 많아지고 시간이 부족하게 된다. 일주일 내내 경마공부를 하면서 모든 출주마의 과거 경주 복기는 물론이고 아주 세세한 것까지 다 조사한다. 마주가 말을 많이 샀으면 돈이 필요해 승부할 거라는 추론을 해서 마주의 최근 마필구입 현황을 조사하는가하면 심지어 기수들의 바이오리듬까지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 남보다 하나라도 더 알면 승리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공부할 것이 더 많이 생기고 시간은 태부족이다. 연구할 시간이 모자라니 출마표를 더 일찍 발표하라고 마사회에 민원을 넣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연구한 정보가 많다고 해서 적중률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필자가 매 경주 예상을 할 때 이것저것 많은 정보를 다 쓴다면 한경주당 2페이지로도 부족할 것이다. 말 한 마리 한 마리 모두 설명할 것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며 전개를 풀어나가는 것도 전개 시나리오가 최소한 서너개가 나온다. 선행을 누가 나설지, 바로 뒤따르는 것은 누가 할지, 무빙을 할지 안할지, 직선에서 치고 올라올 말은 무엇인지, 선행을 받은 말이 레이스를 느리게 끌지 빨리 끌지, 레이스가 빨라서 추입마가 못 올라올지, 레이스가 느려서 인기마 중에서 손해 보는 말이 없는지 등등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많이 알고 따져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각 경주에서 가장 비중이 큰 요소는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 경주에서는 어떤 전개가 나오더라도 이말은 축이므로 이말 전개만 중심으로 다른 넘을 따지면 된다는 등의 정확히 경중을 따질 줄 아는 게 중요하다. 정보를 많이 모으는 것보다 쓸 데 없는 정보를 잘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지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판단을 내리기 쉬운 것이 아니라 더 헷갈리기만 한다. 정보끼리 서로 충돌하면서 간섭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많이 알아서 좋은 것이 아니고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중요한 것만 고르는 혜안이 필요하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잘 아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