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부산말이 서울말보다 강한가?

  • 최고봉 | 2009-05-0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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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신문지상에 어느 고등학교가 일류대에 많이 보냈는지가 발표된다. 몇몇 특수학교를 빼고는 전국의 고등학교가 평준화가 되었기 때문에 원칙대로 한다면 모두 거의 비슷한 성적이 나와야 하나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같은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조차도 일류대 합격생 수가 몇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무작위 추첨으로 학생을 배정 받기 때문에 각 학교가 출발선은 동일하나 3년 이후의 결과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 이유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이와 똑 같은 현상이 경마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서울말이나 부산말이나 신마를 구입하는 시장이 서로 같기 때문에 망아지 때의 마필자원 차이는 없다. 그런데도 작년부터 시행해온 교차경주에서 부산말이 일방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3관 대회는 1위에서 5위까지 거의 부산말이 싹쓸이를 했고 금년 첫 교차경주인 KRA컵마일 경주에서도 부산말이 1위에서 5위까지 휩쓸었다. 이정도 결과라면 서울의 관계자들이 모두 사표를 제출해야할 정도의 충격적인 결과다. 어떻게 같은 자원으로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가.

부산에 우연히 좋은 말이 많이 배정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마필자원의 숫자로는 서울이 훨씬 많기 때문에 2년 연속 부산에만 좋은 말이 갈수는 없을 것이다. 유능한 조교사 때문이라면 확률상 숫자도 많고 경험도 많은 과천이 유리하다. 더구나 대부분 부경의 조교사가 과천에서 조교보나 기수생활을 한 사람들로 과천에서 배우고 익힌 사람들이다. 기수 측면에서 본다면 역으로 과천이 더 우수하다. 과천에서 중상위권에 있던 이쿠가 부산에서는 다승 1위를 한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부경이 과천에 비해 조교량이 많아서 실력이 좋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이것이 결정적인 차이라면 과천도 조교량을 늘리면 된다. 그렇다면 과천과 부경의 어떤 차이가 경주마의 실력 차이를 가져왔을까.

과천과 부경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는 경주로 구조가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직선주로에서 오르막 구간만 있는 부경과는 달리 서울은 대부분이 내리막이라서 마필에게는 아주 편한 주로라고 볼 수 있다. 서울은 결승점 1200미터 전부터 시종 내리막이다가 결승점 약 300미터 전부터 오르막이다. 즉 내리막에서 탄력을 받아 가속을 한 다음 마지막 G1F를 비교적 편하게 진행한다. 반면 부경은 결승점 1200미터 전부터 시종 오르막이라서 결승점으로 갈수록 걸음이 느려진다. 다시 말해 1200미터 대부분을 내리막으로 편하게 뛰는 서울말하고 1200미터 내내 오르막만 뛰는 부산말과의 차이가 나중에 능력의 차이까지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이러다 보니 기록면에서 보면 모든 거리에서 부산이 서울보다 늦다. 부경에서는 1000미터를 1분 5초대에 우승하는 말이 많다. 과천에서는 2초대와 3초대가 대부분인 점을 감안한다면 무려 2초 이상의 차이가 난다. 이것은 부경의 주로가 1000미터 내내 오르막만 있어서 기록이 느려졌다고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부산 말이 서울말보다 변마라서 5초대의 느린 기록이 나온 것도 아니고 부산 말이 모두 승부를 기피해서 5초대라는 한심한 기록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즉 부산의 5초대 말이나 서울의 3초대 말이나 능력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말의 능력 차이가 아니라 경주로 구조의 차이에서 기록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이런 주로에서 성장하면서 단련된 부산 말들은 근력이 붙고 거리가 늘어나면서 더더욱 강하게 성장한다. 서울에서는 능력을 보이던 말도 부산 주로에 가서 오르막만 뛰면 졸전을 펼치는 경우가 나온다. 반면 부산에서는 조금이라도 근성이 부족한 말은 직선주로에서 버티지 못해서 모두 도태된다고 보면 된다. 부산말이 서울에 오면 홈그라운드보다 더 편한 경주로에서 지치지 않고 펄펄 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모래주머니를 양다리에 달고 연습하다가 실전에서 모래주머니를 떼고 달리는 육상선수와 같을 것이다.

이밖에도 과천에 비해서 부경이 직선길이가 더 길어서 체력 소모가 많다든지, 대부분 직선주로인 1600미터에서 뚝심을 기른 부경과 코너가 4개나 되는 1700미터에서 힘안배에 치중하는 서울과의 차이라든지 하는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이유든지 이것은 경주로의 구조적인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서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경주력 차이가 일시적인 이유가 아니고 구조적인 차이 때문에 나온 것이라면 앞으로도 부경마필이 서울마필보다 계속해서 강세를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