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경마

  • 최고봉 | 2011-01-0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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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경마인의 꿈은 승리다. 그것도 조금 이기는 것이 아니라 크게 이기는 대박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가 갈구하는 승리보다 패배의 경험이 더 많다. 그래서 혹자는 경마는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므로 일찌감치 포기하고 경마를 끊으라고 권한다. 주변에서도 자신 있게 경마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드물다.

경마는 오락과 재테크의 경계선에 있는 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마가 가지고 있는 오락의 기능보다 돈을 버는 쪽에 관심이 더 많다. 이쪽에만 관심을 두면 경마에서 이기는 것은 무조건 돈을 따야만 된다. 주지하다시피 경마에서 돈을 이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매경주 30프로라는 가혹한 세금을 공제하다보면 게임이 진행될수록 모든 사람의 환수 기댓값은 제로에 근접하게 되기 때문이다. 경주 참여자들은 회를 거듭할수록 거지가 되어가고 판을 벌린 마사회와 국가만 배를 불리는 구조인 것이다.

하지만 경마는 엄연히 오락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아주 재미있는 게임인 것이다. 이쪽에 비중을 두면서 소액으로 경마를 즐기는 사람은 백프로 경마를 이길 수 있다. 아니 이런 분들은 이기고 지고라는 기준을 벗어난 사람들이다. 영화를 보더라도 관람료를 지불해야 하고 물놀이를 가더라도 최소한의 기본 경비를 지출해야 한다. 경마도 그정도 기준으로 소액을 지불하고 재미있는 여가생활을 즐기기로 한다면 경마에서 이기고 지고 하는 것은 별개문제가 된다.

그러나 인간이란 욕심을 가진 동물이라서 대부분의 경마팬들은 소액으로 즐기기만 하는 건전경마를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소액으로 즐기려하다가도 중간에 흥분하거나 이성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액수가 커지고 어느새 돈을 따느냐 잃느냐의 입장에 서기 쉽다. 그러다가 또 금전적 손실을 보게 되면서 후회를 반복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목표를 잘 못 설정한 탓도 있다. 너무 이기려는 쪽으로만 초점을 맞추다보면 오히려 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손자는 일찍이 이기고 지는 방법에서 이기는 쪽보다는 지지 않는 쪽에 초점을 맞춰서 전략을 수립했다. '전쟁을 잘하는 자는 먼저 내가 지지 않도록 준비하고 이길 수 있는 적을 기다려 싸운다. 지지 않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이기는 것은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 昔之善戰者, 先爲不可勝, 以侍敵之可勝. 不可勝在己, 可勝在敵.《原文 孫子兵法》第四 (軍形篇) 아군이 전쟁에 대비해서 미리 철저히 준비한다면 전쟁에서 지지 않는다. 그러나 적군을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실수나 허점이 있거나 또는 행운이 도와주어야 한다. 결국 경마에서 손해 보지 않는 것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지만 경마에서 승리하는 것은 통제 불가능한 변수들이 많아서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경마 승리의 요체는 승리 자체 보다는 지지 않으려는 리스크관리에 있다. 금액이 나도 모르게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한 자금관리, 불확실한 경주를 모두 버리고 가능성이 높은 경주에 집중하는 전략 등이 모두 이에 해당된다. 어려운 경주를 피하고 아주 쉬운 이길 수 있는 경주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경주에서까지 돈을 벌려 하다가는 아는 경주에 쏟아 부을 자금마저 날려버릴 수 있다. 이중으로 손해를 보는 것이다.

경마에서 이기는 것은 내가 잘한 것도 있지만 운도 크게 작용 한다. 어떤 경주에 입상에 실패했던 말이 나중에 보면 월등한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단지 내가 이겼던 경주에서만 부진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겼을 경우 운이 좋았다라고 겸손하게 생각해야 한다. 경마는 수많은 변수가 있기 때문에 이기는 것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내에서 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앞으로 이기는 날이 많아질 것이다. 새해부터는 지지 않는 경마를 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