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경마장에서 라면을 먹고 싶다.

  • 포스트 | 2009-12-1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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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불어터진 우동 한그릇 사먹기위해 한시간씩 시간을 허비했던 기억이 있다.
차는 휴게소 이정표를 보고 진입하면서부터 밀리기 시작한다. 주차하는데 또 시간을 허비하고 아수라장 같은 분식코너로 들어간다. 그리고 불어터진 우동 한그릇 먹고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보통 한시간씩 걸렸다.

조미료 맛만 나는 국물에 질 나쁜 면발을 삼키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죄 값을 치루는 기분이었다. 그 시절 필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했던 메뉴가 바로 "라면"이었다.
전국민의 간편식인 라면이 그리웠지만 업주 입장에서는 라면은 값을 비싸게 책정하는데 한계가 있다. 또 조리 시간도 오래 걸리는 등 여러가지 단점 때문에 자기들 편한 메뉴를 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은 먹을 수 없는 메뉴였다.
고속도로 이용자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우동 또는 오뎅으로 한끼 떼우고 또 힘든 여행길을 재촉했던 것이다.

1980년대 이후 고속도로 교통량 증가에 비해 그와 관련된 제반 시설은 준비되지 않았던 10-20년전 시절의 이야기이다. 이 시기의 휴게소 운영자나 관련 주유소 업주들은 짧은 시간에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현재는 많이 변했다. 휴게소의 시설도 좋아졌고 깨끗해 졌다.
뿐만 아니라 음식의 질과 종류도 무척 개선됐다.
특성화된 지역 음식을 공급하는 휴게소도 있고 대부분의 휴게소가 고객의 니즈에 충실해지고 있다. 편의점도 생겼고 분식 한식 간단한 중식등 여러가지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당연히 라면도 여러종류의 라면을 선택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는 다양한 음료도 살 수 있고 커피도 여러 가격대를 선택해서 마실 수 있게 됐다.

물론 지금도 영동고속도로나 일부 구간에서는 여자화장실 부족등 불편한 시설과 운영 문제가 도마위에 오르기는 한다. 또 명절때는 어쩔수 없이 많은 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신규 고속도로의 휴게소 시설이나 운영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는 평가이다.

짧은 시간에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요인은 바로 경쟁시스템의 도입이다.
고속도로가 늘고 휴게소가 늘자 공급자 중심의 구조에서 소비자 중심의 구조로 시스템이 뒤바뀐 것이다.

지금 과천 본장에서는 구관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그렇찮아도 붐비는 예시장 주변이 너무 혼잡스럽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고 예시장에서 말을 관찰하고 또 줄을 서서 마권을 구입하고 경주로를 나서거나 TV 모니터를 본다.
그러다 제주경주나 부경경주가 시작될때 5천원을 내고 뒷편 매점에 가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떼운다. 20여년 전 예비군 훈련때 먹던 도시락 보다도 못한 수준이지만 값은 5천원이다. 하지만 허기를 달랠려면 먹어야 한다. 그냥 배 속에 밀어 넣는다.
먹다 보면 정말 화가 난다. 라면 국물이라도 있으면 좋을 듯 싶어 컵라면이라도 찾으면 없단다. 왜냐하면 마사회에서 팔지를 못하게 한단다. 청소하기 귀찮고 냄새가 나고 여러가지 이유에서란다.

신관이건 구관이건 그 어떤 식당도 경마팬들 중심이 아니다. 공급자 중심이지 경마팬들은 안중에도 없다.
경마쟁이들 호주머니는 아무나 빼가도 된다고 생각해서인지 식당도 몇개 없다. 음식도 형편없고 메뉴도 형편없다. 식사 후에 물 한 컵 편하게 먹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식당 외부에서 과거 예비군훈련장에서나 봤던 커다란 스텐레스 물통을 이용해야 한다.

그나마 괜찮았던 그린식당도 공사중이다. 무슨 어디 노조에서 인수해 장사할 예정이라니 지켜봐야겠고, 과거 그린식당은 경마장 북문으로 이전했다고 종합지에 광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가기엔 너무 멀다.

식당 사장들은 일주일에 2-3일 운영하니 경영이 어렵다고 죽는소리 한다. 다 거짓말이다. 대부분 짭짤하게 또 일부는 상당하게 돈 벌고 있다. 열심히 하지 않고 대충 싸구려 도시락 가져와서 팔아도 아무 문제없다. 경마팬들이 다른데 갈데가 없으니 좋은 도시락을 사오고 좋은 음식을 제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당연히 라면도 판매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한다.


이젠 경마팬들이 라면 한 그릇, 컵라면 하나 사먹을 수 없는 이런 상황 즉 마사회 편의주의 시스템을 바꿀때가 됐다. 사용자이자 고객인 경마팬들이 나서서 개선하자고 제안해야 한다.

또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경쟁을 도입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식당을 늘리고 식당 장사를 할 사람을 공개 모집한다고 가정하자. 아마도 경주 출발 3분전에 구관 1층 마권 구매창구에서 줄 서듯이 희망자로 넘쳐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경마팬들은 질 좋은 음식을 만족스럽게 먹고, 또 여유있게 경마를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건강한 마사회 매출로 연결될 것이다.

이게 기본이다. 마사회는 고객 즉 경마팬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하고 또 그렇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수십억들여 씨수말 수입하는것 보다도, 또 지방에 수백억들여 육성목장 만들어 텅텅 비게 두는 것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경마팬들을 위한 서비스 개선이다.
서비스 개선의 첫번째가 경마팬들이 편하게 식사할 장소를 더 늘리고 질 좋은 음식을 판매하게 만들어야 한다.
공짜로 달라는 것도 아니고 싼 값에 거저 달라는 게 아니다. 돈 낼테니 제대로 된 음식을 먹게 해 달라는 것이다.

마사회 직원 그리고 마필 산업 관련 직원들의 월급은 대통령이 주는게 아니다. 당연히 마사회장이 주는 것도 아니다. 경마팬들이 주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망각하고 지금처럼 컵라면도 못 팔게 하다가는 하루아침에 쓰레기통에서 마권 줏는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게 세상사의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