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대통령' 박태종 기수가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가 한국경마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다.
그런 그가 현재 고군분투하며 써내려가고 있는 챕터는 '한국경마 최초 2000승'이라는 대업(大業). 이마저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50을 넘긴 나이로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에 임하고 있는 그를 위해, 경마팬과 경마관계자가 이색적인 응원전을 펼친다.
D-14, 30년의 긴 기다림을 끝내기까지 남은 숫자...
그리고 한국경마의 새로운 챕터를 열 숫자
1987년 4월 데뷔하여 올해 기수경력만 30년차에 접어든 박태종 기수. '코리안더비(GⅠ)‘, ’그랑프리(GⅠ)‘ 등 대상경주 우승만 39회에 달한다. 연도 최우수 기수로 5회 선정되었고, 지난해에는 ’올해의 공정대상'에 수상되기도 했다. 해당 상은 경주마 관계자 중 공정한 경마시행에 기여한 사람에 대한 포상이기에 의미가 크다.
박 기수는 평소 술이나 담배는 일절 손대지 않으며 엄격한 체력관리로 50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한 기량을 선보이고 있어 후배기수들 사이에선 '경마계의 큰 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한국 경마의 새로운 역사를 써갈 新주자로 거론되는 문세영마저 그 앞에선 고개를 숙인다. 문 기수는 박 기수에 이어 역사상 2번째로 통산 1000승을 달성 했을 때 “나도 은퇴를 하게 될 텐데 그때까지 박태종 선배와 함께 출전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계속 등 뒤에서 선배를 쫒으며 말을 타고 싶다”고 존경심을 표현한 바 있다.
경마실력은 물론, 올곧은 행실로 경마팬, 경마관계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결과 박 기수는 지난 1999년, '영예의 전당'에 첫 번째 기수로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참고로 '영예의 전당‘은 모든 기수들의 꿈이자 기수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이기에 선발 기준이 매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경마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매순간 경마만을 생각하며 달려온 30년. 그런 그가 지금 '한국경마 최초의 2000승'이라는 결승선을 바라보며 신중하게 경주마에 오르고 있다. D-14회. 결승선까지 남은 숫자다. 지난해 월평균 6회에 달하는 우승기록을 세우고 올해 역시 1월 한 달 동안 7번 우승을 거머쥐며 대통령으로서의 건재함을 과시 중이다. 현 추세를 감안 시 빠르면 3개월, 늦어도 상반기 중에는 2000승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대감에 비례해 부담감 역시 크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기로 소문난 그였지만, 2000승에 대해 언급할 때면 비단 더 조심스러워하는 박 기수. 지난해 첫 대상경주였던 '제13회 헤럴드경제배'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진행된 인터뷰에서도 그는 “이제부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 같다”며 달성 시기나 목표와 관련한 명확한 언급을 피했다. 현재는 2000승을 달성하기 전까지 되도록 매체와의 접촉도 피한 체 경기에만 집중하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한국마사회가 우렁찬 응원의 목소리가 아닌 '소리 없는 응원'을 펼치기로 해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응원 현수막' 아래 커져가고 있는 '노란 물결'
한국마사회는 지난 29일, 렛츠런파크 서울 관람대 2층 외벽과 중문사이에 '살아있는 전설. 박태종 2000승'이라는 문구가 적힌 대형 현수막을 설치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응원모습과 별다를 것 없이 보인다. 한국마사회는 여기에다 노란 포스트잇을 활용한 기발한 응원을 추가했다. 현수막 아래에 '응원 메시지 게시판'이라는 응원공간을 마련하여 경마팬들이 응원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한 것.
시작한지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박태종 기수의 팬임을 자처하는 많은 경마팬들이 '노란 응원'에 동참했다. 저마다 노란 포스트잇에 응원의 목소리를 담아 빈 공간을 채워나감으로써, 당초 새하얗던 벽이 어느새 노란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다. 그중에는 정성들여 박태종 기수의 얼굴을 그릴 정도로 열성적인 팬의 응원도 포함되어 있다.
렛츠런파크 서울이 과거 뚝섬에 위치했을 때부터 박태종 기수를 응원해왔다는 한 열성팬은 “박태종 기수의 모든 모습을 지켜봐온 산증인으로서 느낌이 남다르다”며, “2000승을 달성하는 순간까지 응원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하며 노란 응원화(畵)에 색을 더했다.
한국마사회 역시 경마팬들과 응원을 함께한다. 박태종 기수가 2000승을 달성하기 전까지 '응원 메시지 게시판'과 '대형 현수막'을 내리지 않기로 한 것. 특히 박태종 기수가 1승을 추가할 때마다 현수막 중간에 위치한 'D-〇〇‘의 숫자를 바꾸기 위해 높은 사다리를 매번 올라야 해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지난 30일, 박태종 기수가 1승을 보탰을 때도 제일 먼저 한 일이 사다리를 찾는 것이었다”며, “그렇지만 박태종 기수를 응원하는 마음은 다른 경마팬들과 다를 바 없다. 숫자를 고치고 내려오며 나 역시 응원의 메시지를 함께 남겼다”고 웃으며 말했다.
◆ 한국마사회, 역사상 세 번째로 아시아경마회의(ARC) 개최 확정
- 1월 24일부터 6일간, 제36회 아시아경마회의 참석차 현명관 회장 비롯 12명 인도 방문
- 제37회 아시아경마회의 국내 개최 확정... 한국경마의 세계적 위상 높일 계획
"역사상 가장 효율적이고 의미 있는 회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한국마사회(회장 현명관)가 1980년과 2005년에 이어 2018년, 3번째로 아시아경마회의 국내 유치에 성공했다.
한국마사회는 지난달 24일부터 29일까지 6일간, 아시아경마연맹(ARF) 주관으로 개최된 제36회 아시아경마회의에 참석했다. 현명관 회장을 비롯해 박양태 경마본부장, 허태윤 마케팅본부장 등 임직원 12명은 이를 위해 하루 앞선 23일, 인도 뭄바이를 방문했다.
이들은 회의 기간 동안 현지에 체류하며, 고위회의, 분과회의, 전문분야 회의 및 공식행사 등에 빠짐없이 참석해 세계경마현황을 파악했다. 또한 당초 계획대로 한국을 차기 아시아경마회의 개최국으로 확정지었다. 그 결과 폐회식 때는 22개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박양태 경마본부장이 단상에 올라 차기 개최국 대표로서 깃발을 건네받기도 했다.
한국마사회는 지난 2015년, 한국경마의 경쟁력 강화와 국제화를 골자로 경마시행계획을 발표한 후 '레이팅제도' 등 선진 경마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PARTⅡ 승격', '한국경마 선진화' 등의 대업(大業)을 달성하겠다는 것. 그런 면에서 이번 회의는 여러 가지로 참석의미가 남달랐다. 현명관 회장을 비롯해 참석자들은 모든 회의 일정을 소화하며 현안에 대해 발표와 실무협의 등을 병행했고, 덕분에 마사회는 '차기 회의 개최 확정'과 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PARTⅡ 승격 후 첫 세계회의 개최로 한국경마를 세계 속에 '각인'할 것
"감사합니다. 제37회 아시아경마회의 개최 준비에 만전을 기함으로써, 2년 뒤 더 나은 모습으로 여러분들을 맞이하겠습니다“
박양태 경마본부장은 차기 개최를 확정지은 후 폐막식에서 소감과 다짐을 함께 밝혔다.
한국마사회가 한국경마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목적으로 아시아경마연맹에 개최 의사를 밝힌 지 정확히 한 달 반만의 성과다. 제37회 아시아경마회의 개최를 희망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마카오, 필리핀, 카타르 등 총 4개국에 달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한국이 선정됨으로써 한국은 아시아경마연맹 가입국 22곳 중 정확히 10번째로 세 번 이상 아시아경마회의를 개최한 나라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됐다.
아시아경마회의를 세 번이나 개최하게 된 것 자체의 의미도 상당하지만, 한국마사회 입장에서는 '제37회', '2018년'이라는 두 단어가 가진 의미가 더 크다.
당초 한국마사회는 '한국경마의 선진화'를 공표한 이래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PARTⅡ' 승격이다. 이를 통해 경마 선진국으로 자리 잡겠다는 것. 한국마사회는 올해를 'PARTⅡ 승격' 원년의 해로 가져갈 생각이다.
집행위원회의에 참석한 현명관 회장 역시 "기존 경마체계를 글로벌 기준에 맞추기 위해 레이팅시스템 도입, 경주체계 개편, 시장개방 등 혁신을 거듭해왔다"며, "이 자리를 빌려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한국경마가 승격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승격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계획대로 올해 PARTⅡ 승격을 확정지을 시, 2018년에 개최될 제37회 아시아경마회의는 시기상 마사회로선 상당한 호재가 될 수 있다. PARTⅡ로서 한국경마의 새로운 위상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무대이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아시아경마연맹에 가입할 수 있는 국가는 아시아로 제한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미국과 유럽 등도 옵저버 자격으로 회의에 참가하고 있어 말 그대로 세계인의 경마축제다.
차기 개최국으로서 첫 단추는 꿴 셈... 내실 있는 준비가 필요한 시점
한국마사회는 1980년에 이어, 지난 2005년에도 '세계 경마를 향한 아시아의 통합 비전'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아시아경마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함으로써 한국 경마의 이름을 알린바 있다.
한국마사회는 2018년에 개최할 아시아경마회의는 단순히 한국경마의 이름을 알리는 수준을 넘어 한국경마의 위상을 높이는 기회의 장(場)으로 가져가겠다는 생각이다. 개회식보다 하루 앞서 인도에 도착, 폐막식까지 참석하며 전(全) 일정을 소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회의장과 행사장 곳곳을 둘러보며 차기 개최국으로서 준비사항들을 면밀히 확인했다.
더하여 코리아컵(GⅠ, 10억, 1,800m), 코리아 스프린트(GⅠ, 7억, 1,200m) 등 올해 신설된 국제경주도 차질 없이 개최함으로써 사전에 국제적인 관심을 집중시켜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한국마사회 관계자는 "2016년은 한국경마에 있어 큰 변혁의 해이다"며, "기회를 잘 활용하여 경마이미지를 개선하는 한편, 경마산업 종사자들의 자부심을 높이도록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참고로 아시아경마연맹은 아시아 지역 경마 발전 및 공정성 제고를 위해 1960년 설립된 연맹으로서 현(現) 의장은 윈프레드 홍콩자키클럽 CEO이다. 한국, 홍콩, 일본, UAE, 싱가포르, 남아공 등 22개의 주요 경마시행국가들을 회원국으로 하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은 가입 대상에서 제외된다.
아시아경마회의는 아시아 경마현황을 파악하고 회원국 간 유대를 강화하고자 아시아경마연맹이 주관하는 회의로서 약 20개월을 주기로 개최되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가입 이래 지금까지 두 차례(1980년 제15회, 2005년 제30회) 아시아경마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 제2의 황제마(馬)의 탄생을 위한 애무의 달인, 시정마
- 황제마 '씨수마'의 안전한 교배를 돕는 애무 전문가 시정마!
- 한해 400~500번의 애무, 교배시즌이 끝나면 실제 암말과 교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말 모양의 앰블럼으로 유명한 스포츠카 제조사 '페라리'. 기본적으로 신차(新車)의 가격이 억대를 자랑하다보니 남자들의 세계에선 소유하고 싶은 차 0순위에 매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정작 페라리의 최고급 스포츠카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비싼 말(馬)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씨수말'이 바로 그 주인공.
한국의 경마산업은 약 8조원의 규모를 자랑한다. 그리고 이를 지탱하는 요소 중 경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하다. 우수한 경주마들이 벌이는 박진감 넘치는 경주를 보기 위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렛츠런파크 서울, 부산경남, 제주 등을 방문한다. 연간 입장인원만 약14백만 명에 달한다. '씨수말'들은 이러한 훌륭한 경주마들을 생산해낸다는 측면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 연유로, ‘스톰캣’처럼 유명한 '씨수말'들은 특급 대우를 받으며 1000억을 호가하는 몸값을 자랑하기도 한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는 씨수마는 '메니피'로서 교배료만 700만원에 달한다. 1년간 교배두수도 최대 100여두에 육박해 벌어들이는 돈만 해도 엄청나다. 때문에 이런 '황제마(馬)'를 다룰 땐 '옥체'가 다치지 않도록 세심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발정기가 되면 암말은 성격이 포악해져, 마음에 들지 않는 수말에게 곧잘 뒷발질을 해 씨수말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이러한 불의의 사고가 일어나지 않게 해결사 역할을 하는 말이 바로 '시정마'다.
시작할 '시(始)', 정사할 '정(情)', 말 '마(馬)'가 합해진 단어로서, 사전적 의미 또한 '교미 때에 암말에게 혈통 좋은 수말이 채이지 않도록 암말의 기분만 떠보는 말'로 정의되어 있다. 결국 쉽게 말하자면 '암말'이 '씨수말'과 원활히 '합방'할 수 있도록 애무를 통해 마음을 녹이는 역할을 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프로 '시정마'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특기로 흥분한 상태의 암말을 진정시킨다. 암말의 뒷발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엉덩이를 비롯해 신체 곳곳을 애무하기도 하고, 오히려 신체 일부를 공격하며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이들은 1년 동안 평균 400 ~ 500번의 시정을 담당하고 있다.
말 그대로 암말에게 애무만 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씨수말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되는 불운한 수말이기에 받는 스트레스 또한 어마어마하다. 일부는 이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또 일부는 자신이 씨수말인줄 알고 달려들었다 뒷발에 차여 시정마로서 장기간 활동하지 못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한국마사회 렛츠런팜 장수(목장장 신광휴)에는 17년 동안이나 이런 '혹독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인기 '시정마'가 있다. '판우드세시'가 바로 그 주인공. 당초 경주마로의 화려한 데뷔를 꿈꿨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덩치로 인해 시정마가 된 비운의 말이기도 하다.
발정기에 포악해진 암말의 격렬한 뒷발질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는 다른 시정마와 달리 '판우드세시'는 오히려 더 저돌적으로 달려든다. 몇 분이고 적극적인 구애활동을 펼치며 결국에는 암말의 승낙을 받아내고야 마는 것이다.
오랜 경력만큼이나 나이도 적지 않다. 무려 21살로서 사람으로 치면 60이 훌쩍 넘은 나이다. 그럼에도 '판우드세시'는 교배기가 되면 하루 최대 30 ~ 40회의 시정 활동을 담당할 정도로 노련함과 정력을 뽐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눈물겨운 구애활동의 결말은 늘 씨수말에게 자리를 내주는 식의 씁쓸한 새드앤딩으로 끝나지만 말이다.
하지만 늘 아쉬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농가에서는 시정마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기분을 풀어주고자 교배시즌이 끝나면 실제 암말과 교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팜 장수에서 씨수말 관리와 교배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김만진 과장은 “스트레스와 위험성 때문에 좋은 시정마를 구하는 것 또한 좋은 경주마를 구하는 것 못지않게 어렵다”며, “암말에게 겁먹지 않고 적극적으로 구애할 수 있는 강인한 성격과 체력이 없다면 절대로 시정마가 될 수 없다”고 시정마의 까다로운 자격을 밝혔다.
통상 말의 교배기는 3월에서 6월 사이로 본다. 한국마사회 렛츠런팜 장수는 이보다 조금 이른 2월 20일 전후로 교배 활동을 펼치며, 방문객들에게 그 모습을 공개한다. 일종의 이색 이벤트인 셈이다. 천혜의 아름다운 풍경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하는 덕분에 매년 많은 사람들이 힐링 명소로서 이곳을 방문한다.
◆ 경마 종주국 영국, 경마는 물론 노벨문학상 수상자까지... 승부가 있는 곳엔 '베팅'이
- 경마종주국답게 축제의 장으로서 경마 즐겨... '로열 애스콧'처럼 왕실이 주최하는 대회도 있어
- 경마시행체 'BHA'와 사설마권업자 '북메이커'가 발매시장 양분... 장외발매소만 8천600여 개
- '베팅의 천국' 답게 노벨문학상 수상자 베팅도 존재... 쇼핑과 베팅을 함께 즐기는 문화

영국은 대표적인 경마 선진국이기 이전에, 경마종주국이다. 더러브레드 품종을 개발하고, 더비(Derby)경주와 혈통서를 만드는 등 현재 전 세계가 즐기고 있는 경마의 기틀을 마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이 “수상이 되기보다 더비 경주 우승마를 가진 마주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는 일화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마주이며 영국 왕실 주최로 경마대회가 개최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심지어 엘리자베스 여왕은 주요 경마대회가 열리는 날이면 남편과 자식을 대동하고 대회장을 방문하여 베팅을 즐기기도 한다. 그만큼 영국에서 경마는 축구와 다름없는 스포츠로서 인정받고 있다.
'로열 애스콧(Royal Ascot)'처럼 큰 규모의 대회는 경마 외에도 일반인을 위한 다양한 행사가 함께 열려 말 그대로 '축제(fair)‘의 장이 된다. 전시회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고, 가족을 위한 놀이시설들이 마련된다. 수천 명의 사람이 드레스와 챙이 달린 모자, 정장과 같은 100년 전 복장을 하고 경마에 열광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문화상품이 된다. 특히 여왕이 주최하는 로열 애스콧 대회의 경우, 여왕이 초청하는 특별손님 즉, '퀸즈 게스트(Queens' guest)가 누가 될지가 매년 언론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규모가 큰 인터내셔널 스테이크스(international stakes)가 열리는 요크시의 경우에는 방문객 열 명 중 한명이 경마를 보러 올 정도로 경마가 지역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한다. 경주가 열리기 6개월 전 부터 시내 호텔 예약이 마감되고, 관광객의 20%가 외국인으로 추산될 정도로 관광 상품으로서의 역할도 크다.
영국에서는 경마시행체인 BHA(British Horse racing Authority)외에 북메이커(bookmaker)라는 공인 사설마권업자들이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 이 북메이커들은 시행체와 마권 발매시장을 양분하고 있다. 1961년 영국 정부의 심사를 통해 개인 북메이커를 합법화 시킨 이후 현재 영국에는 약 8천 600여 개에 달하는 장외발매소가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설 북메이커는 래드브록스(Ladbrockes)로서 영국을 포함, 유럽 전역에 2,700여 개의 장외발매소를 가지고 있다. 이들 장외발매소는 영국 내 도심이나 대형쇼핑몰, 축구경기장 등 시내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쇼핑을 즐기다가 이들이 운영하는 장외발매소에 들러 경마, 축구, 크릭캣 등 스포츠 베팅을 즐긴다.
영국 전체 경마매출에서 경마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1%밖에 되지 않는다. 매출의 99%가 장외에서 발생된다. 굳이 경마장을 찾아가지 않아도 신문이나 담배를 사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나 마권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베팅은 비단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승부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든 가능하다. 세계다트챔피언십, TV 서바이벌 프로그램 탈락자, 영국 황실에서 태어날 아기의 이름에 힌트를 주기 위한 애완견 경주 등 다양한 베팅 이벤트들이 열린다. 말 그대로 영국은 '베팅'의 천국이다.
특히 래드브록스는 매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에 베팅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몇 년 전에는 굉장히 높은 배당률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맞춘 사람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자를 보도할 때 래드브록스의 배당률이 언급될 정도로 노벨문학상 수상자 베팅은 경마와 더불어 래드브록스를 대표하는 베팅 종목이기도 하다.
이처럼 영국은 '베팅'에 매우 우호적이거나 권장하는 분위기는 아니더라도 여가로서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분위기다. '베팅'을 즐기는 사람을 도박꾼으로 여기는 한국과는 전혀 다르다.
가족과 함께 영국에서 1년간 살다 온 장모씨(50세)는 “영국은 베팅의 천국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시내 어디를 가도 쉽게 스포츠나 경마에 베팅 할 수 있다”며, “런던의 경우, 상가 지역에 래드부록스, 윌리엄 힐, 코랄 등 북메이커가 운영하는 장외발매소가 즐비하다”고 영국 베팅문화에 대해 말했다.
또한 장씨는 “베팅이 자기 책임 하에 즐기는 취미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단순히 장외발매소를 방문한다고 해서 '도박꾼'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는 없다”며, “실제 첼트넘 골드컵(Cheltenham Gold Cup), 엡섬 더비(Epsom Derby) 등 큰 경주가 열리면 평소 경마를 즐기지 않던 사람들도 마권을 구매하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참고로 영국의 장외발매소는 일주일 내내 경마 뿐 아니라 여러 스포츠 종목에 베팅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외발매소 기능에 충실한 편이며 규모가 매우 작은 소형점포 형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