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년차의 기수생활이다. 최근 컨디션은 어떤가.
군대를 다녀온 후 경마교육원에 입학했기 때문에 늦은 데뷔였다. 그런데 벌써 9년차라는 경력이 쌓였다. 수습기수의 타이틀을 달고 인터뷰를 했던 것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다. 내 후배가 선배가 되고 또 그 후배가 선배가 되었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최근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몸상태 만큼은 오히려 20대때보다 훨씬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한동안 위축되어 있었다. 최대한 신경을 쓰지않으려 노력했지만 조교사들의 불미스러운 일이라던지 동료 기수들이 도태되다가 꿈을 포기하는 일까지. 동거동락하던 동료가 한두명도 아니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았고 나역시 그런 선택을 해야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아직 꿈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해보는데까지 죽을 힘을 다해 해볼것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9년차의 경력답게 성숙하고 냉정한 판단을 하며 끝나지않은 도전을 이어갈 것이다.
■ 데뷔때부터 지금까지 기초체력에 신경을 많이 쓴다.
체력 뿐만아니라 모든 것들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기수라는 직업은 몸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더욱더 체력단련이 필요하다. 데뷔때부터 특별한 일이 없는한 한주에 한번은 꼭 산에 올랐다. 산에 오르지 못한 날은 숙소의 지하 헬스장에서 평소보다 3배로 높은 강도의 근육 운동을 소화했다. 선배들의 조언으로 처음 시작한 기초체력 단련인데 지금은 생활화가 되어서 힘든줄도 모르겠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기회가 주어졌을때 항상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므로 더욱 신경을 쓴다. 조금이라도 도태되어 있는 기수들에게 한번의 기회란 절대 놓쳐서는 안돼는 벼랑끝 동아줄이다.
■ 데뷔초반 주목을 받았고 2013년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은 성적이었다.
처음 데뷔했던 2008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부담이 될 정도로 주목을 받았었고 많은 마방의 부름이 있었다. 3년정도는 나름 만족스러운 성적과 기승 경험이었다. 한참 기승술에 자신감이 붙고 노하우가 생기고 있을 무렵인 2011년 부터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한번의 큰 부상이 발단이다.
2011년에 신마 능력검사를 하다가 앞다리 골절로 낙마 사고를 당했다. 낙법을 쓴다고 썼는데 고꾸라지는 방향이 너무 좋지 않았다. 요추 압박 골절로 3개월을 쉬어야 했고, 그날이 생전 처음 통증으로 눈물을 흘린 날이다. 큰 부상이 트라우마로 남는 기수들도 몇몇 있긴 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부상 트라우마가 더 심했다. 단순히 통증을 느끼고 3개월동안 치료와 재활운동을 하고 끝이 나는것이 아니다.
기수들이 부상을 당할때는 찰나이기 때문에 눈 떠보니 병원이라던지 완치되면 잊는다던지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에게 남는 것은 부상당하는 찰나의 생생한 슬로우 화면이다. 능검때 신마의 다리가 우둑하며 부러지는 소리부터 시작해서 마필과 함께 고꾸라지며 주로의 모래가 점점 다가오고 내 몸이 부딪히며 이상한 느낌과 소리가 들렸고 허리가 잘려나가는 듯한 극심한 고통이 따랐다. 주로의 모래 알갱이가 보일정도로 찰나의 순간이 1~2분 정도의 슬로우 비디오로 생생히 3개월동안 재생되었다.
어떻게든 이겨냈는데 그 다음이 또 문제였다. 1년후인 2012년 상당히 추운 겨울 어느날이었다. 1700m 경주였고 처음 기승해보는 마필의 윤승중에 일어난 일이다. 갑자기 물고 튀는 악벽마였고 주의사항을 미리 들었지만 그 이상이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도 전에 방향전환을 하다 급작스레 재갈을 물고 펜스로 달려갔다. 펜스를 뚫고 나가며 낙마를 했고 어깨부터 떨어져 크게 다쳤다. 견봉쇄골인대의 80% 파열로 3개월을 쉬어야 했다.
이어지는 두번의 큰 부상으로 사기가 꺾였다. 거기에 맞물려 감량이점의 신인기수들과 외국인 용병기수들까지 자리를 위협하고 들어와 설 곳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자리잡고 활로가 생길무렵의 부상이라 심적으로의 타격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다. 작년까지도 그 여파가 이어졌다. 올해부터는 심적으로 안정을 많이 찾았고 컨디션도 좋기 때문에 변화를 모색중이다. 자신감도 다시 재충전 되었다. 이제 기회를 잡는 일만 남았다.
■ 명마에 기승한 경험이 많은 편이다.
좋은 마필들을 꾸준히 기승한적은 없지만 한번씩 경험을 해봤다. 끝물이었어도 예전 53조의 '섭서디'에 기승해 2착을 차지해 본 적이 있고 6조의 '밸리브리' 기승 경험도 있다. 15조의 '스마티문학'은 망아지때 순치조교와 능검까지 기승을 했었다. 역시 다른 마필들과 큰 차이가 있는 마필들이었다.
그중에서 단연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마필은 9조의 '가야산성'이다. 2009년의 장마철이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선배기수의 부상으로 기수 교체가 이루어졌다. 당시 감량을 받고 있던터라 교체기수로 '가야산성'에 기승할 수 있었다. 당일 교체였어도 최선을 다해 우승을 하고 싶었다. 상대를 보니 쉽지않은 경주였다.
강축마로 팔리는 '탑포인트'가 있었고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던 '홍지'와 '투원'이 상대마필 이었다. 조교사님의 조언과 작전을 듣고 싶었다. 9조의 지용훈조교사님께 여쭤보았다. '가야산성'의 각질과 작전 또는 주의사항이나 전개등. 조교사님의 대답은 명료했다. "편하게 타고, 똑똑한 말이니 알아서 뛸거다". 아무정보 없이 기승을 했다. 결과는 2착 입상.
1800m 경주였고 불량주로에 '탑포인트'가 도주를 했다. 거리가 몇십미터만 더 길었어도 우승까지 가능했을 것 같다. '가야산성'은 한번의 기승이었지만 지금까지 기승해 본 마필중 가장 똑똑한 마필이었다. 초반은 채찍을 때려도 나가질 않는다. 코너 진입을 하자마자 마필이 긴장하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4코너에서 별다른 신호도 주지 않았는데 재갈을 물기 시작한다. 직선주로가 되자 모든 힘을 다쏟아내며 내달린다. 말그대로 고삐만 잡고 있었던 것 같다. 2착을 차지하면서도 전혀 힘이 들지 않았다. 남은 평생 '가야산성'같은 마필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지금껏 기승한 마필들중 유난히 기억에 남는 마필이나 경주가 있다면.
조금전 언급드린 마필들은 경마 역사에 남는 명마들이라 당연히 기억에 남고, 첫승을 함께한 예전 40조의 '큰고리'라는 마필이 기억에 남는다. 또 한두 말씀을 드리고 싶다. 49조의 '예스트라이크'라는 마필이다. 애착도 많이 가고 가장 아쉬운 경주를 뛰었던 마필이다.
2012년 부산에서의 오픈경주 'KNN배 대상경주'에 출주했었다. 상대들이 쟁쟁했다. 부산의 '감동의바다'와 '상승거탑'. 서울의 '당대전승'과 '깍쟁이'. 당연히 '예스트라이크'는 인기 최하위였고 단승식 배당이 160배 정도 되었을거다. 큰기대 없이 경험에만 만족을 하려했다. 막상 게이트가 열리니 '예스트라이크'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입 외측을 따라갔고 힘이 빠지기는 커녕 더 뛰려는 근성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욕심이 났다. 욕심때문에 상대마보다 훨씬 빠르게 추진 타이밍을 잡았고 서두르는 바람에 7착에 머물러야 했다. 7착이었어도 7두의 마필들이 결승선 몰려 들어왔고 우승마인 '상승거탑'과의 착차는 2마신이 채 되지 않았다.
추진 타이밍을 조금만 늦췄더라면 3착까지는 하지 않았을까 후회도 됐고 운이 좀 따라줬다면 이변까지 일으킬 수 있었다라는 생각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서울에 올라와서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정말 아쉽고 안타까웠던 경주이다.
■ 앞으로 기대가 되는 신예마가 있다면.
요즘에 망아지들을 몇두 순치하고 있다. 신마들인데 49조 조교사님이 감사하게도 나에게 맡겨주셨다. 신인기수들의 감량이점이 확실하게 유리한 부분이라 많은 마방에서 신인기수와 인기기수, 용병기수들을 선호하고 있다. 그런와중에도 49조 조교사님은 잊지않고 나를 믿어주신다. 한참 자괴감에 빠져있을때도 조교사님이 격려와 조언으로 도움을 주셨고 실질적인 기승으로까지 신경을 써주신다. 믿음에 꼭 보답을 드리고 싶어 신마 조교에 공을 들이고 있다.
당장의 경쟁력보다는 꾸준한 성장 가능성에 목표를 두고 있는 신마들이 몇두 있다. 49조의 '최강펀치', '히포크레네', '초오롱마'. 아직 어린마필들이라 차후 기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다. 자질이 괜찮은 마필들이고 잠재력이 풍부하다. 담당하고 있는 동안에는 최선을 다해 애정을 주고 성장을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는.
요즘 경마장의 분위기가 어수선한 것 같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여러 불미스러운 일들로 소란스럽지만 동요하지 않는다. 예전부터 계획하던 일이 있었다. 기수 생활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 잠시 접어두고 있었는데 다시 준비를 이어가고 싶다.
체력단련 틈틈히 대학교를 다녔었다. 졸업을 하고 석사 과정까지 진행을 하려다 멈췄지만 내년이나 내후년 정도부터는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과목은 경주마술이다. 어찌보면 틈새 시장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승마는 어느정도 대중화가 되어있어 승마장과 승마인력이 몇년 사이 많아졌다. 장애물과 마장마술관련 인력도 늘고 있다. 하지만 경주마술은 특성화 학교에서도 강사 인력은 찾기 힘들다. 트렉라이더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향후 오년 십년을 보고 미리 준비를 하려 한다.
장기적인 목표일뿐이고 그래도 역시 기수의 꿈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 기수가 먼저이고 기수가 가장 큰 목표이다. 9년차라 해서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차근차근 망아지부터 공들여 성장시키고 보람을 찾을 것이다.
■ 검빛팬들에게 한마디.
기승 횟수가 많지 않은데 한두라도 기승할때면 대부분의 팬분들은 예시장이나 하마대에서 짓궂게 말씀하신다. 어느날은 말을 왜 타냐며 집에가서 농사나 지으라고까지 말씀하신 팬분이 계시다. 가슴이 아팠지만 충분히 이해도 된다. 경력이라는 것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노하우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덤덤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응원은 다르다. 경주 기승을 할때면 항상 예시장 전광판 쪽에서 아저씨 한분이 힘찬 응원을 해주신다. "시천아, 난 너의 영원한 팬이다", "박시천, 화이팅". 이 한마디에 위축되었던 가슴은 활짝 펴진다. 단 한분의 팬이지만 그 분 덕분에 자신감이 생긴다. 검빛의 많은 팬들께서도 부진 기수가 기승했을때 힘찬 응원을 해주신다면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항상 시작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고 지켜봐 주신다면 변화한 모습 보여드리겠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