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불꽃을 태운다,
한국경마의 역사 최초로 기수 정년을 향해 달린다.

■ 기수데뷔 38년차다. 최근 컨디션은 어떤가.
컨디션은 항상 좋다. 하지만 얼마전 부상을 당한뒤로 무릎이 좀 성치않다. 올해들어 큰 부상을 두번이나 당했고 체력관리에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몇주전 조교를 하고 난 후 마필에서 내려오다가 갑자기 요동치는 바람에 무릎이 꺾인 적이 있다.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관절이 퇴행성이 되버려 조금만 부주의해도 부상을 심하게 입는 편이다. 병원다니고 재활치료도 빠짐없이 열심히 해서 지금은 별무리없이 체력관리에 평소대로 임하고 있다.
월요일 조교하고 화요일 산에 다니고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조교와 운동을 하고 토요일, 일요일 경주에 기승하다보니 38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가버렸다. 1979년 4월에 처음 뚝섬 경마장에서 데뷔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첫 기승의 설레임은 기억하고 있다. 가장 막내로 시작했던 시절에서 어느새 가장 고참이 되었는데 아직도 뚝섬 시절의 기수 생활은 눈에 선하다.
■ 최고참에 최고령 기수이다. 그런데도 여러 활동에 참여를 하고 있다.
경마장 기수들 사이에서나 최고참 최고령이지 사회에서는 아직 한참 생활전선에서 뛰는 나이가 아닌가. 경마기수의 생명이 길지 않기 때문에 더욱 나이가 들어보이는 것 뿐이다. 20살의 젊은 친구들이 신인으로 들어오면서 상대적으로 최고령이 되어가지만 마음가짐은 그 친구들 못지않게 열정적이다.
현재 기수협회의 고문으로 활동을 하고 있다. 협회 임원들이 바뀌어도 최고참이라 고문의 위치는 항상 나에게 주어진다. 몸이 아프지 않은 이상 모든 협회의 활동은 참여 하려고 노력한다. 쓰잘데기 없는 활동이 아니고 전부 의미가 깊은 일들만 하기 때문에 최대한 참석하려 하고 있고 내가 솔선수범 해야 후배 기수들이 조금 더 참석율이 높아질거라 생각한다.
봉사활동은 어려을적부터 재미있게 참여를 했고 기수협회의 차원에서가 아니더라도 고아원이나 노인병원에 가끔 다닌다. 나 자신도 어렵게 생활해왔고 그 분들의 힘든 일상을 경험도 해봤기 때문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나자신의 보람까지도 얻을 수 있는 좋은 계기이다. 어떤 단체든 개인이든 봉사활동이 있다면 두손 두발 다 걷고서 참여를 하고 싶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못되더라도 내가 피곤해서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 처럼 행복한 것이 없다.
■ 뚝섬 경마장 시절부터 활동한 기수가 몇명 되지 않는다.
기수들은 후배기수 몇명을 제외하고는 뚝섬 경마장 경험을 해본 기수가 몇명 되지 않는다. 조교사들도 마찬가지로 선배들이 몇명 되지 않는다. 17조 김점오조교사와 동기이고 13조 이희영조교사가 조금 앞이다. 부산의 조교사, 서울의 조교사 합해도 선배에 속한다. 가끔 마주쳐서 옛날 이야기를 할때면 뚝섬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생각나고 지금보다 훨씬 재미있었던 것 같다.
뚝섬 경마장과 비교를 해보자면 건물이나 시설은 비교할바가 못되지만 주로는 오히려 뚝섬때가 더 나은것도 같다. 배수문제 만큼은 뚝섬시절이 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갈수록 과천 경마장도 급격히 성장하고 있지만 뚝섬 시절의 향수 때문인지 그당시가 더 마음에 든다.
■ 나이에 걸맞지 않은 탄탄한 근육을 유지하고 있다.
40년동안 운동을 해왔는데 당연히 좋지 않겠는가. 경주마에 기승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 기수로 활동하고 있지만 어려서부터도 워낙 운동을 좋아했다. 지금 50대 중반의 나이여도 몸에 잔주름도 없이 젊은 사람 못지않은 복근도 유지하고 있다.
요즘 무릎때문에 조심하기 위해서 산을 잠시 올라가지 못하고 있는데 40년동안 해온 아령은 지금도 매일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은 더 열심히 해야하고 하루라도 운동을 쉴때면 오히려 몸이 아프고 쑤신다. 무릎관절이 더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고 더이상 나빠지지 않는 선에서 날씨가 좀 풀어지면 다시 산에 오를 것이다. 젊은 친구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체력관리는 필수이다.
■ 요즘 실력 좋은 후배기수들을 보면 어떤가.
해를 거듭할수록 신인 후배들의 실력은 감탄하게 만든다. 경마교육원의 교육이 도대체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 놀라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외국 용병기수 같은 기승술에 마인드도 보통들이 아니라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그 와중에 뚝섬시절부터 함께 했던 박태종기수가 2000승을 하게 되서 너무나 기뻤다. 그나마 기수로 함께 한 시간이 가장 길어 말이 잘 통하는 후배기수 중 한명이다. 기세가 등등한 후배들 사이에서 2000승을 했다는 것이 더욱 뿌듯하게 만든다. 후배지만 정말 자랑스러운 후배이다. 앞으로도 함께 끝까지 달렸으면 좋겠다.
■ 얼마전 오랫만의 1군 입상을 차지했다.
지난 7월 3일 올해들어 처음으로 입상을 차지했다. 33조의 '젠테너리'라는 마필이다. 2착의 좋은 성적을 냈지만 우승이 너무나 아쉬웠다. 우승을 아쉬워하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나에게도 승부욕은 남아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젠테너리'는 참 위험한 마필이다. 조교할때만 여러번 낙마를 했다. 속보로 가면 괜찮은데 조금만 빨리 조교를 해도 가다가 갑자기 서버린다. 고개를 푹 숙여 기승자를 떨어트린다. 재미있는 것은 꼭 경주 전날만 되면 기승자를 떨어트린다는 것이다. 나름 긴장을 하고 있나보다. 올 초에는 '젠테너리'에 기승해 낙마하는 바람에 늑골 두대가 부러진 적도 있다.
7월 3일 경주에서는 '젠테너리'의 빠른 순발력을 앞세워 선두 외측 두번째에 따라갔다. 직선주로에 들어서자 평소 4코너에서부터 걸음이 서던 마필이 그날따라 더 뛰려고 근성을 보였다. 욕심이 생겼다. 직선주로에서 선두 유지를 했지만 막판 한발 싸움에서 아쉽게 2착으로 밀렸다. 성적 자체는 만족할만 했지만 기수의 욕심은 한자리에서 멈추면 안됀다. 나역시 항상 모든 경주에서 우승을 원한다.
■ 지금껏 기승한 마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필이 있다면.
거의 40년동안 마필에 기승을 했기 때문에 기억나는 경주도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포경선'이라는 마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경마팬들중에는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포경선'은 명마중의 명마다. 지금이야 마필 보호차원에서 부담중량을 제한하고 있지만 당시 '포경선'은 68kg의 부담중량에도 우승을 차지한 마필이다.
조금씩 부중이 늘어갈때마다 불안은 더해져갔는데 의심을 접어 두라는 듯 '포경선'은 더욱 잘 뛰어주었다. 기수라는 직업으로 대상경주의 우승은 정말 힘든 일고 기쁜 일이다. 그런데 '포경선'은 대상경주에서도 가장 큰 '그랑프리'의 우승을 안겨주었다. 1986년의 '그랑프리' 대상경주이다. 다시는 만나기 힘든 명마이다.
또 한두 말씀드리면, 1979년 데뷔한 해에 첫승을 함께 했던 '태종대'라는 마필이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인지 결승선을 통과한지도 모른채 계속 추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봐도 마필에게 미안할 정도로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모두 나에게 큰 의미이고 고마운 마필들이다.
■ 앞으로 기수로서 목표나 계획이 있다면.
38년동안 기수 생활을 해왔지만 앞으로의 기수생활이 더 기대가 된다. 목표는 기수 정년까지 말을 타고 싶다. 기수의 생명이 짧기 때문에 후배들에게 정년까지 할 수 있다는 새로운 목표를 심어주고 싶다. 승수에 대한 목표도 있다. 마냥 버티기 기수 생활이 아닌 이기기 위한 기승을 할 것이다.
현재 후배들 못지않은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 최대한 부상없이 한시즌, 한시즌, 풀시즌을 소화해낼 것이고 300승까지는 해냈지만 그 이상의 높은 승수를 기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또한 기승 두수가 많지 않더라도 한주에 한두 마리라도 기승해 감각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검빛팬들에게 한마디.
항상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는 팬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앞으로 정년까지 7~8년의 시간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때까지 사랑으로 지켜봐 주시고 그에 맞는 좋은 모습으로 보답해 드리겠다. 갈수록 여름 날씨가 더 뜨거워지는 듯 하다. 짜증나고 힘든일이 많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혀질테니 긍정적인 마인드로 항상 즐겁게 지내시길 바란다. 경마장에서 웃는 얼굴로 뵙길 바라겠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