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마 - (7) 새강자

  • 권국장 | 2018-11-2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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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마 - (7) 새강자


 

한국경마에 국산마의 꿈을 개화시킨 ‘새강자’



 

세계 경마가 베팅산업으로 활성화되면서도 최종적인 지향점은 바로 경주마 생산으로 귀결된다. 경마선진국들이 혈통을 중요시하고 보다 좋은 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바로 좋은 말을 생산한다는 목표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명마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새강자’라 할 수 있다. 현역시절 역대 최다연승 타이기록, 국산마 최초 그랑프리 대상경주 우승, 역대 최다 연도 대표마, 역대 최다 프리핸디캡 선정 등 각종 풍성한 기록을 세웠으며, 국산마의 전성시대를 연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새강자’는 현재 마사회 기록상으론 1996년 4월 제주 길갈목장(김경민 생산자 겸 마주)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 대천목장과 길갈목장은 하나의 목장으로 여겨졌으며(당시 제주에서 활동한 1세대 경주마 생산자 중 한명이던 고 김병현 생산자가 전체적인 관리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새강자’를 관리했던 박원선 조교사가 평소 밝혔던 바에 의하면 김병현 생산자의 추천으로 ‘새강자’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고 한다.


 

‘새강자’는 망아지 시절에는 체구도 작고 목장에서 다리를 다치면서 수술자국이 있어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말이었다고 한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생산자가 박원선 조교사를 통해 장석린 마주에게 추천을 했고, 저렴한 가격에 서울경마장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1998년 9월 2세의 나이로 빠르게 데뷔전을 치른(당시 성장이 늦고 순치가 덜 됐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국산마가 3세에 데뷔를 하던 시기였다. ‘새강자’의 데뷔전에서 2세마는 ‘새강자’가 유일했다.) ‘새강자’는 3착을 기록하며 무난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경주로 적응을 마친 ‘새강자’는 두 번째 경주부터 연승행진을 이어가더니 무려 15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는 전설적으로 거론되는 ‘에이원’의 25연승 이후 ‘포경선’의 15연승과 타이기록이었다.


 

더불어 ‘새강자’는 15연승을 기록하는 도중 특별경주 3회 우승, 그랑프리를 포함한 대상경주 4회 우승을 기록하며 한국 경마를 일대파란으로 몰고 갔다.


 

특히 ‘새강자’는 그랑프리 대상경주에서 ‘신세대’와 ‘울프사일런스’ 등 당시 내로라하는 외산마들을 상대로 출전해 국산마로는 처음으로 그랑프리에서 정상에 올랐다. 당시 세 살에 불과했던 ‘새강자’가 국산마는 외산마를 이길 수 없다는 통념을 깨뜨리며 IMF로 위축됐던 경마팬에게 시원함을 안겨 주었다.


 

이후 ‘새강자’는 한국마사회장배 대상경주 3연패를 달성하는 등 전성기를 보냈지만 높아진 부담중량으로 인해 과거 3세 때 보여준 파괴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러나 ‘새강자’는 국산마 부문에서는 ‘자당’과 함께 단거리와 장거리를 양분하는 대표마로 이름을 높였고, 외산마와의 경쟁에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활약으로 당시 서울경마장을 주름잡는 대표마로 군림햇다.


 

‘새강자’는 9세이던 2005년까지 경주에 출전을 해서 2승을 거두는 노장투혼을 보이면서, 6년 9개월간 총 15억 3000여만 원의 상금을 획득했다. ‘새강자’의 가격이 1550만원(마사회 신고가였지만 당시 신고가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고, 관계자마다 가격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자기 몸값의 100배를 벌어준 셈이다.


 

하지만 이렇듯 뛰어난 활약을 펼친 ‘새강자’는 비운의 말이 되고 만다. 부마는 ‘피어슬리’로 좋은 혈통을 물려받았지만, 모마인 ‘축제’(뉴질랜드산)가 부마 혈통이 확인되지 않는 더러브렛계종이라 ‘새강자’가 씨수말로 활용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씨수말 활용을 할 수 없었던 ‘새강자’는 9세가 되던 2005년 6월까지 경주마로 활동을 했고, 좀 더 경주마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재기를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그해 12월 은퇴식을 가지게 됐다.


 

‘새강자’의 은퇴식은 명콤비였던 이성일 기수의 기승으로 주로에 나섰지만 몸상태가 망가진 상황이라 은퇴질주를 하지 못하고 100m를 걸어가는 것으로 대신했다.


 

‘새강자’는 이후 한국마사회 제주경주마목장과 장수경주마목장에서 관상마로 노후를 보내다가 2009년 산통으로 인해 폐사하고 말았다.






권순옥 | 경마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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