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문중원 기수, 102일만에 영면에 들다!
6일 대책위와 한국마사회, 합의 마무리
9일 합의 공증 문제로 한차례 진통 후 장례절차 진행

승부조작, 조교사 개업 비리 등을 사회에 던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고 문중원 기수의 장례식이 9일 부산경남경마장에서 열렸다.
시민대책위원회와 민주노총대책위원회 등과 한국마사회 간에 큰 이견을 보이면서 평행선을 달리던 합의는 지난 6일 ‘한국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 ‘문중원 열사 민주노총 대책위원회’와 한국마사회가 ‘부경경마공원 사망사고 재발방지’안에 합의하면서 극적인 타결을 했다. 문중원 기수가 지난해 11월 29일 기수 숙소에서 목숨을 끊은 지 99일 만이다.
오랜 진통 끝에 끌어낸 이번 합의에는 제도개선을 위한 연구용역 착수, 책임자 처벌, 제도개선과 유족 지원 등이 담겼다.
앞으로 마사회는 3개월 이내에 부산경남 경마시스템, 경마관계자의 계약관계와 업무 실태 등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해야 하며, 그 결과를 정부에 보고하고 제도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책임자 처벌 합의에 따라 문중원 기수 사망의 책임자가 밝혀지면 “형사책임과 별도로 마사회 인사위원회에 면직 등 중징계를 부의하고, 징계여부 확정 전까지 직위부여해제를 유지”해야 한다.
제도개선 방안으로는 “경쟁성 완화, 차별금지, 건강권, 조교사 개업심사, 기승계약 표준안, 기수면허갱신제도 보완, 소득안정” 등 모두 9개 항목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마사회는 순위에 따라 추가로 상금을 주는 ‘부가순위상금’을 신설하지 않고, 부경 기수 전원의 동의를 받아 부경기수 상금 가운데 일부에 서울의 부가순위상금 공제율을 적용하기로 했다.
기수의 건강 관리를 위한 재해위로기금을 늘리고, 근골격계질환 예방을 위해 부경기수들에게 운동처방사도 지원하기로 했다.
조교사 개업심사 기준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정량평가를 실시하고 외부 평가위원을 늘리며, 평가점수의 객관성을 확보하기로 했다.
기승계약서 표준안도 마련된다. 마사회는 조교사의 부당지시를 막고 기수의 권익 보호를 명시한 기승계약서 표준안을 제시해, 조교사와 기수 간 계약이 체결되도록 적극 권장하기로 했다.
또 부경 기수들의 소득안정을 위해 마사회는 평소 조교훈련에 충실히 참여하고 경주 기승 횟수가 월 8회(주 2회)를 충족할 경우 월평균 소득을 세전 300만 원 이상 되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 대책위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제도개선 안에는 진전이 있었지만 “마사회의 완강한 거부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과제로 남게 됐다”면서 “비록 한계가 있는 안이지만, 시민대책위는 100일 전에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이 합의안을 수용한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7∼8일에 추모제를 열었으며,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떠난 문중원 기수는 9일 오후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 노제를 지낸 뒤 모든 장례 절차를 마무리 했다.
하지만 9일 부경경마장에서 다시 한 번 진통을 겪어야 했다. 바로 대책위원회가 발표한 입장문 내용이 문제가 된 것.
당초 대책위(민노총)와 한국마사회는 고 문중원 기수의 장례일인 9일, 지난 6일에 합의된 합의서에 대한 공증을 진행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9일 공증의 마사회 쪽 당사자인 부경경마공원 경마본부장이 대책위가 6일 낸 입장문의 일부를 문제 삼으며 공증을 거부해 장례절차가 중단되고 양측의 교섭대표가 합의이행과 공증 진행을 재확인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40분쯤 합의가 파기됐다. 석병수 공공운수노조 부산경남경마공원지부장은 이날 낮 12시10분쯤 부산법률타운의 한 법무법인에서 마사회 부산경남경마공원 본부장(마사회 부산본부장)과 만났다. 지난 6일 도출한 합의안 이행을 공증하려고 마련한 자리였다.
하지만 마사회 측은 공증을 미뤘다. 바로 부경경마본부장이 문중원 대책위가 낸 입장문 가운데 “7명의 기수와 말관리사가 죽음으로 고발한 마사회 적폐권력을 우리 힘으로 해체하고자 한다. 문중원 기수의 장례를 치른 후 시민대책위원회는 ‘마사회 적폐권력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로 전환하기로 하였다”라는 부분을 문제 삼은 것.
또한 부경경마본부장은 “공공운수노조 홈페이지에 게시된 입장문을 내리고, 입장문을 내리는 것이 어려우면 앞으로 부산에서 투쟁하지 않겠다는 평화선언을 약속”하라는 요구도 했다.
대책위는 이에 대해 “향후 불필요한 다툼을 줄이고자 이미 합의된 사안에 대해 공증까지 받으려 한 건데, 마사회 측에서 갑자기 ‘적폐’ ‘투쟁’ 등이 들어간 문구를 거론하며 공증을 못해주겠다고 했다”며 “사실상 합의 파기와 다르지 않다”고 반발했다.

결국 문중원 대책위는 9일 이에 대한 입장을 내고, “영결식 당일에 약속을 어기고 합의 파기를 시도한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조차 상실한 것”이라며 “한국마사회가 자신들의 치부가 사회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막기 위해 합의 파기를 협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부경경마공원 경마본부장이 문제 삼은 ‘마사회 적폐권력 해체를 위한 대책위원회 결성’은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서만 7명이 죽었는데도 하나도 바뀌지 않는 한국마사회를 지켜본 결과”이며 이번 합의에 응한 배경이라고 설명하고, “이는 80여 개 단체로 구성된 시민대책위와 민주노총 열사대책위의 자주적 결정이며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한 결의”라고 밝혔다.
마사회 측은 공증 중단을 두고 논란이 일자 “6일 작성한 모든 합의가 이행되도록 한다”는 입장을 시민대책위 측에 전했고, 합의서에 대한 공증도 공공운수노조 부산지역본부와 부산경남경마본부가 수일 내에 진행하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중단됐던 고인의 영결식 및 장례절차는 오후 5시부터 진행됐다.

권순옥 | 경마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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