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애]왜 일본의 여성들은 경마에 열광하는가

  • 운영자 | 2010-10-2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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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본의 여성들은 경마에 열광하는가
오구리캡교 VS 다케유타카교



일본의 유명한 경주마 ‘오구리캡(Oguri Cap, オグリキャップ)’과 ‘다케 유타카(武豊)’라는 경마기수에 대한 이야기는 일본 경마의 사회적 위상에 큰 변화가 일어났던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JRA를 비롯한 경마관계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붐이 일기 시작한 일본경마는 1988년, 회색 괴물이라는 별명의 경주마 ‘오구리캡’과 젊고 잘생긴 기수 ‘다케 유타카’라는 두 영웅의 등장으로 결정적으로 변화하였다. 이 두 영웅은 거의 모든 연령대의 여성들을 매혹시키며, 어수선한 모습의 남자들로 가득하던 경마장에 새로운 분위기를 불어넣었다. 또한 사회의 합법성 안에 수용되지 못하던 경마를 도박의 형태에서 건전한 여가활동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영국 런던대학의 인류학자‘돌로레스 마르티네즈’의 『왜 일본인들은 스모에 열광하는가』라는 책은 문화인류학으로 본 일본 대중문화의 10가지 코드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매우 흥미로운 것은 경마가 도박이 아닌 스포츠라는 점을 일본 여성들의 경마에 대한 사랑을 통해 예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주마 ‘오구리캡’을 교주로 받드는 여성팬들, ‘다케 유타카’기수를 응원하는 오빠부대 여성들, 그들은 경마장에서 무엇을 얻고자 했으며, 왜 일본의 젊은 여성들은 경마에 빠져들었는가에 대한 고찰은 매우 인상적이다.

일본의 경마에 대한 인식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과거 일본의 기성세대는 경마를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았으며,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경마’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금기시 되었고, 사회적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1989년 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경마는 스포츠 라기 보다는 도박형태로 인식되어 왔으며,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러나 ‘오구리캡’이라는 회색 말 한 마리가 경마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
‘오구리캡’이라는 말 앞에 바쳐진 엄청난 열광과 숭배행위를 두고 사람들은 ‘오구리캡교’라고 부르며 종교현상에 비견할 정도였다.



일본인들이 신앙적으로 떠받들었던 불굴의 투지마 ‘오구리캡(Oguri Cap)신드롬’은 일본경마의 선진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현상 중 하나다. 이 말은 그가 올렸던 성적보다도 불굴의 투지 때문에 일본 경마팬들이 잊지 못하는 명마다.

‘댄싱 캡’과 ‘실버 샤크’ 사이에서 태어난 두 살 난 회색 말 오구리캡은 1987년 5월 지방 경마에 속해있는 가사마쓰에서 경주를 시작, 첫 경주에 2등을 한 뒤 연속 8번의 우승을 기록하였고, 곧 회색괴물이 등장했다는 소문이 일본 전역에 퍼졌다. 오구리캡을 중앙 레이스에서 뛰게 해야 한다는 팬들의 목소리가 높아갔고, 1988년 1월, 마주는 JRA에서 뛸 수 있도록 오구리캡을 매각했다.

오구리캡이 큰 인기를 모은 것은 지방경마장에서 12전 10승을 기록하고, 중앙경마장으로 입문한 경력도 이채롭지만, 대부분의 지방경마장 경주마와는 다르게 중앙경마장에서도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간혹 우승을 놓칠 때도 있었지만 팬들은 개의치 않고 ‘오구리짱’을 외쳤다.
등록된 혈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클래식 경주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오구리캡은 중앙경마에서도 불굴의 투지로 우승의 우승을 거듭했다.

오구리캡은 1989년 올 커머즈 레이스(G3), 마이니치 오우칸(G2) 우승에 이어, 텐노 쇼(G1) 경주에서는 최상위권의 말들을 이기고 준우승을 거두었다. 뒤 이어 일본 최고의 빅레이스 재팬컵에서는 호주의 ‘홀릭스’에게 근소한 차이로 뒤져 2위를 기록하였다. 이후 오구리캡은 주인이 다시 바뀌면서 너무 많은 경주에 출전해 침체기를 겪기도 하지만 팬들은 여전히 그를 응원했고, 특히, 은퇴 레이스였던 1990년 그랑프리 경주인 아리마키넨(G1)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차지함으로써 일본 경마팬들은 더욱 더 그를 잊을 수 없었다.

‘오구리캡’을 널리 알리고 ‘오구리캡교’를 확장시키는데 대단한 역할을 한 상품 중 하나는 다름 아닌 봉제인형이다. 이 인형은 1989년 가을에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여성들이 주요 구매자들이었지만 남자들도 인형을 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구리캡교의 여성들은 처음에는 맹목적으로 뛰어든 유행으로 이 말을 좋아했지만, 영광으로 빛나는 오구리캡의 모습을 보며 자신과 동일시할 대상을 찾는 과정을 통해 자신들의 외로움을 치유하기도 했으며, 말과 경마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되는 등 하나의 살아있는 오구리캡을 소유함으로써 수많은 개인소유의 ‘오구리짱’으로 분화되었다.

여성들과 달리 남자들은 다른 종류의 위안을 얻었다. 명문가문의 자손은 아니지만 지방경마장에서 중앙으로 진출해 악조건을 이겨내고 성공신화를 이룬 ‘오구리캡’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 오구리캡의 승리는 곧 자신들의 성공을 향한 가능성과 희망을 의미했다.

오구리캡의 추종자들은 지금까지도 이 말을 신격화해오고 있다. 오구리캡이 살았던 사육장은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방문하는 일종의 성지가 되었는데, 이것 역시 종교적인 숭배에 버금간다.




한편, 오구리캡에 비해 그 정도는 덜하지만, 일본 최고의 기수‘다케 유타카’에 대한 열광 또한 ‘다케유타카교’라는 이름을 붙일만하다.
1987년 3월, 18세의 나이로 이제 막 기수 자격을 얻은 ‘다케 유타카’는 출발부터 매우 촉망받는 기수로서의 자질을 보였다. 그해 11월 키쿠카 쇼(G1)와 그 다음해 4월의 오카 쇼(G1)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록을 깨면서 많은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물론, 잘 생긴 외모 덕분에 여성팬들의 높은 인기를 모아 경마세계에서는 이례적으로 슈퍼스타 대접을 받는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그리하여 일본 경마사상 최초로 경마장의 대기소와 난간 앞부분에 별로 경마에 대해 잘 알 것 같지 않은 여성들이 몰려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젊은 여성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여성들도 일명 ‘왕자 유타카 기수’와 경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큰 인기에 반해 유타카는 남성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다.

‘오구리캡’과 ‘다케 유타카’의 공통점은 많은 여성추종자를 가지고 있다는 점과 오래된 경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씻어내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스포츠의 성격을 중성화시켰다는 것이다. 일본경마에 대한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가치들은 부정적인 것으로부터 긍정적인 단계로 느리게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했지만, 그 중에서도 젊은 여성들의 참여가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젊은 여성들은 나이든 세대가 갖고 있는 경마에 대한 반감이 없었다. 그들에게 경마는 도박이 아니라 새로운 즐거움을 주는 스포츠일 뿐이었다. 여전히 경마를 도박으로 간주하고, 이것이 젊은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도 있지만 여성들이 경마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일본에서 경마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레저스포츠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출처:강마애님의 "선마선진화의 길, 다시보자, 한국경마!"
(http://blog.naver.com/kangmaa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