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칼럼
[KRA블로그]경마장에서 얻은 극적인 여성 참정권
운영자
|
2012-03-07 09:26
조회수
2414
추천
0
추천
[경마장에서 얻은 극적인 여성 참정권]
김연아, 장미란, 외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걸그룹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파워가 강해지고 있고, 뛰어난 실력을 보여줍니다. 남성 못지않은 리더십과 뛰어난 업무능력은 세계의 무대에서 큰 활약을 하고 있죠.
하지만 지금처럼 여성들이 직접적으로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고,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된 것은 불과 몇 백 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남아선호사상과 가부장적 가정 중심으로 인해 여성들은 자신을 마음껏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이젠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들은 마음껏 목소리를 높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몇몇 나라는 아직도 자유롭지 못한 곳이 있죠.
2009년 쿠에이트에서 열린 선거는 세계가 주목했습니다. 여성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 끝에 2005년 처음으로 여성의 참정권이 도입된 후 열리는 선거였기 때문입니다.
여성참정권이란 여성이 국정의 일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참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하지만 쿠웨이트에서는 2005년 전까지 여성들의 이런 참정권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쿠웨이트는 걸프지역에서 최초로 선거를 통해 의회를 선출되는 나라를 만들었고,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의정 활동을 해가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슬람국가에서는 여성의 참정권이란 개념이 아직 보편화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직도 얼굴과 머리를 가리고 다녀야 하며 짧은 옷을 입을 수 없는 나라있는 보수적인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바논에서는 초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가진 여성만이 투표권을 가질 수 있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피선거권을 인정하지 않았으니 쿠웨이트가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른 변화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9년에 열린 선어에서는 47년 쿠웨이트 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네 명의 여성이 의원으로 당선되는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이슬람국가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습니다. 미얀마는 1922년, 에콰도르는 1929년에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했죠.
많은 나라 중 가장 극적인 여성 참정권 쟁취를 하기 위한 투쟁을 보여준 나라가 영국입니다. 왕실 중심의 국가인 영국은 여성참정권을 얻기 위한 여성운동가의 노력으로 이뤄낸 결실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1792년 “여성 권리의 옹호”라는 책을 통해 여성의 선거권을 처음 주장한 후 1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을 고되고, 힘든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단단하게 닫힌 것 같던 여성참정권의 문을 열게 된 계기가 일어나게 됩니다. 그 장소는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일어나게 되는데요. 현재 경마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엡섬더비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1913년 6월 4일에 엡섬더비에서는 왕실을 비롯한 귀족들이 모두 참여해 경마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경기로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빅 매치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에서 왕 소유의 경주마인 “앤머”가 마지막 직선 코너를 들어설 때 일어났습니다. 갑자기 한 여성이 경주로에 뛰어들게 되는데요. 시속 60km를 달리는 앤머는 갑작스런 여성의 등장에 놀랐지만 속력을 멈출 수 없었고, 여성은 말발굽에 밟히고, 말과 기수는 말에 떨어지게 됩니다. 당시 경주로에 뛰어난 여성은 “에밀리 데이비슨”이라고 하는 여성참정권 운동가였습니다. 런던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여성단체에 가입해 활동을 했습니다.
투철한 운동가였던 이 여성은 언제나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었고, 당시 왕과 귀족들이 모여든 곳에서 자신의 뜻을 알리고자 이런 행동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성보다는 왕의 소유인 경주마와 기수에게 더 많은 관심이 쏠렸고, 여성은 중요한 경주를 망쳤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또한 여성의 지갑에서 나온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보고 자살이 아닌 단지 경주를 방해하기 위한 행동으로 보았습니다. 크게 다친 여성은 4일 후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고, 그녀의 장례행렬에는 수많은 여성인권단체 여성이 모여 들어 그녀의 뜻을 기렸습니다. 그녀의 죽음이후 15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여성참정권을 인정받게 되었고, 자신을 희생하며 운동을 한 이 여성은 지금까지 민주주의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댓글
0
로그인 하시면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목록
이전글
승군전 걸음 재본 말
최고봉
다음글
마필능력은 기수와의 궁합이 중요하다.
청계산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