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칼럼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최고봉
|
2009-02-11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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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큰딸 아이의 여고 졸업식에 갔다. 예전 내가 학교 다닐 때의 졸업식을 생각하면서 강당에 들어섰다. 한편으로는 정든 교정을 떠나 아쉽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출발을 하는 희망찬 모습을 그리면서 강당에 들어갔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생소한 풍경에 너무 놀랐다. 세상이 달라져도 이렇게 달라졌구나 하는 변화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내 상상과 다른 것은 모든 졸업생이 의자에 앉아서 졸업식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군대식 부동자세로 추운 강당에서 한 시간 내내 서있던 우리와 달랐다. 난방이 잘된 강당에서 모두 앉아서 편하게 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앉아 있는 것이야 그렇다고 해도 졸업생들의 태도는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단상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은 거의 없고 모두들 자기들끼리 재잘거리면서 수다 떨기에 바빴다. 아무도 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제지할 힘도 없는 듯 했다. 가끔 사회를 보는 선생님께서 졸업생 여러분 좀 조용히 해 주세요 하지만 이내 아이들 소음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훈화를 하는 교장 선생님이 다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우리는 졸업식에 후배들이 모두 강당에 나와서 노래도 불러주고 박수도 치곤했었다. 중고교 시절 모두 그랬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1,2학년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방학 중에 나오라고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단 한명 재학생 대표가 중간에 나와 송사를 했다. 그것도 1분 정도나 될까말까 하게 아주 짧게 읽고 강단을 내려갔다. 내용은 선배님들을 떠나보내서 섭섭하고 졸업을 축하한다는 간단한 내용이었다. 하긴 그것도 졸업생 중에서 듣는 학생이 거의 없고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사진 찍느라고 바빴다.
그런데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교장 선생님의 긴 훈화였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는 재미없는 덕담을 아주 길게 하셨다. 옛날 생각이 나서 웃었다. 교장 선생님께서 내빈을 일일이 소개시키면서 일어나서 인사하게 하는 것도 옛날과 똑 같았다. 내빈이 많아서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럴수록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는 더 커졌다. 내빈 중에 지역 국회의원이 있었다. 유일하게 그분께만 축사를 하는 시간을 줬다. 아이들의 소음은 더더욱 커졌다. 그러나 역시 정치인은 달랐다. 아주 짧게 연설을 끝내면서 미래의 지역구 유권자인 졸업생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고 물러났다.
내가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그 다음 졸업가를 부를 때였다. 초등학교때는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로 시작되는 졸업가를 후배들이 먼저 부르고 우리가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교실아로 시작되는 답가를 했었다. 중고교시절에는 올드랭사인이라는 외국곡에 가사를 붙인 석별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오랫동안 사귀었던 정든 내 친구들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마음속에 올드랭사인을 부르면서 기다렸다. 그런데 시작되는 노래는 발라드풍의 유행가였다. 이게 뭐여? 나중에 물어보니 ‘이젠안녕‘이라는 노래란다. 이 노래도 나온 지 꽤 오래된 흘러간 노래여서 졸업생들이 나눠준 프린트를 보고 부르고 있었다. 노래소리도 작아서 연습을 하지 않은 듯 했다. 맞다. 우리는 전교생이 방학 때 나와서 졸업식 예행연습을 했었다. 지금은 연습은 고사하고 졸업식 날에만 졸업생만 나오는 것이다.
졸업식이 끝나자 떠들던 학생들이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재미 없는 식순이 다 끝나서 환호를 하는 듯 했다. 이런 학생들을 우리가 다닐 때처럼 주목하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 때처럼 군대식의 규율과 폭력적인 체벌이 불가능해서 일사불란한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변화된 세대에 맞춰서 형식도 변화를 줘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졸업가를 학생들에게 어필하는 노래로 바꾼 것은 그런 측면에서 고무적이다. 하지만 일일이 내빈을 인사시키고 아무도 안 듣는 지루한 훈화를 내빈에게까지 할애하는 것은 시대에 역주행 한다는 느낌이었다. 졸업식장은 예전보다 훨씬 밝고 활기찼다. 우리 때처럼 서운한 감정은 하나도 없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더 중시하는 세대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듯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이 변화에 잘 적응하면 살아남을 것이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것이다. 졸업식을 보면서 급변하는 세상에 내 자신도 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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