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 시인과 해변의 경마

  • 최고봉 | 2011-04-0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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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순수하고 치열한 시쓰기로 유명한 함민복 시인이 최근 결혼했다. 나이 50줄에 늦장가를 가는 것도 그렇지만 제주도 신혼여행을 가면서 처음으로 배행기를 타본 것도 화제였다. 함시인은 경마 애호가로서 경마에 관한 시를 남겨 우리 경마팬에게도 친숙한 시인이다.

시인 유하가 그의 시 천일마화에서 함시인이 고배당을 적중한 것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전략>
삼년전 두배로 라피드샘이란 말은 내 친구에게
1,050배라는 폭탄 배당을 선사한 바 있어요.
물론 인생은 바뀌지 않았죠.... 그 친구 시가 생각나
네요.
시집 한권에 삼천원이면
든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천배당에 쑤셔넣으면 남들 두 달 월급인데
생각하면 마음은 어느새 드넓은 주로가 되네.
<후략>
함시인의 시를 검색해 보면 천배당에 쑤셔 넣으면 이하 경마 베팅으로 노래한 부분이 다음과 같이 다르게 되어 있다. 국밥이 한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이 다른 부분이 원시를 함시인이 후에 고쳤는지 아니면 그부분만 유하씨가 경마베팅에 비유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경마팬들에게는 시집 한권 값으로 천배당에 쑤셔 넣으면 남들 두달치 월급이 된다는 표현이 훨씬 정감 있게 다가온다.

라피트샘과 두배로의 경주 1,067배(시원문의 1050배는 유하씨가 배당을 착각한듯)는 쌍식이나 삼복승식이 없던 1997년에 아주 드물게 터진 만배당이라서 올드팬들은 말 이름까지도 기억하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44조 장두천 마방의 라피트샘은 권진한 기수가 두배로는 36조 김양선 마방의 말로 지금 10조 조교사인 정호익 기수가 기승했다. 함시인은 그후로 해변의 경마라는 시에서 이 사건을 언급한다.

주말 빈집 지킨 개가/ 말 냄새를 맡는 것은 아닐까
두배로/ 라피드샘
사내는 고액 배당을 안겨주었던/ 말 이름을 읊조리며 바다로 간다
라피드샘/ 두배로
멈춘다/ 일년 동안 오직 다섯 쪽 몸 늘이는/ 육쪽마늘 맵게 푸른 밭
밀린 방세가 먼저 제방에 선다/ 뒤따르는 사내의 걸음이 무겁다
수 만 결 바닷물이 햇살을 접고 있다/ 눈이 부시다/ 사내는 말들이 잊혀질 때까지 해풍에 머리를 헹군다
말울음소리/ 함성소리/ 바닷물소리
감았던 눈을 뜬다/ 바다 저편 섬 끝자락 4코너를 돌아/ 느닷없이 질주해 오는 푸른 말떼/ 사내는 고개를 떨군다

경마장에는 수많은 사람이 온다. 수많은 시인묵객이 오갔으나 경마에 대해서 노래한 이는 참 드물다. 함시인은 자신이 고배당을 맞췄던 경주를 후에 시로 썼다. 바닷가에서 파도가 밀려오는 것을 4코너를 돌아 질주하는 말떼로 보인다는 표현은 경마팬들은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당구에 빠지면 천장에 당구공이 보이듯 경마에 몰입할때는 파도까지도 말이 달리는 것으로 보이는 법이다. 골프에서 홀인원하는 것처럼 어렵다는 만배당을 적중했던 함시인은 복받은 사람이다. 늦게나마 함시인의 결혼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