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독재정권시절 카세트테이프를 틀다보면 테이프 말에 건전가요라는 것이 있었다. 테이프 말미에 생뚱맞게 군가가 흘러나오는가 하면 ‘잘살아보세’류의 국민훈계풍의 노래 등이 나왔다. 당시 노래를 듣던 사람들은 마지막 부분의 관제가요가 나오면 짜증을 내는 사람이 태반이었고 심지어는 나라에 대한 욕설까지 퍼붓는 사람이 많았다.
1979년 공연윤리위원회는 ‘건전가요 음반 삽입의무제’를 시행해 가수가 음반을 발매하면 건전가요 한 곡을 필수적으로 수록하게 했다. 당시 음반에는 전체적인 음악 콘셉트와 전혀 다른 ‘진짜 사나이’ 등의 군가와 ‘잘살아보세’ 등 국민계몽류의 노래 등이 삽입됐다. ‘아! 대한민국’(정수라·1984년) 등 일부 건전가요가 대중적 인기를 누렸지만 198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건전가요=관제 가요. 문화 통제’라는 부정적 인식이 컸다.
큰 인기를 누린 이문세 4집 ‘사랑이 지나가면’(1987년)에는 건전가요 ‘어허야 둥기둥기’, 변진섭 1집 ‘홀로 된다는 것’(1988년)에는 ‘과수원길’이 실렸는데 이 노래들은 큰 저항은 없었지만 전체 음악을 듣다가 생뚱맞은 건전가요가 나오면 기분을 잡치기 일쑤였다. 당시 중고교생들은 카세트테이프를 사자마자 건전가요를 지우기 바빴을 정도다. 건전가요의 원래 취지는 어버이 독재정권이 국민을 지도계몽하고자 했었던 것이지만 국민들은 음악 들을 때마다 원치 않는 노래가 나와 짜증과 욕설을 마구 해대 역효과만 났다. ‘건전가요 음반 삽입의무제’는 결국 1990년대 초반 폐지된다. (동아일보 15/5/28)
그런데 이런 건전가요같은 것이 마사회 동영상에 버젓이 나오고 있다. 최근 과거경주 동영상을 보다 보니 사행산업감독위원회와 마사회 공동명의로 경주동영상 앞머리에 홍보자막이 약 5초간 뜨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약속해요!
적당히 즐기는 건강한 여가
구매상한액(10만원)을 준수하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권고사항입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 한국마사회
대부분의 경마팬은 한 경주에 10만원 미만의 베팅을 한다. 한경주에 10만원씩 베팅을 해도 적중하지 못할 경우 하루에 100만원이 훌쩍 넘어 보통사람들은 과도한 베팅을 할 수 없다. 주최측이나 사감위가 나서서 건전하게 여가를 즐기라고 할 필요가 없다. 저 경고문을 보다보면 경마팬을 인격적 주체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베팅을 일삼는 중독자 취급을 한다는 느낌이다.
세계 최악의 환급률로 경마팬들의 등골을 빼는 정부여 좀 더 솔직하자. 노름꾼들 돈뜯어 농어촌 지원은 물론 어린애들 교육에도 지원하는 정부가 우리더러 적당히 베팅하라고라? 진정으로 경마팬을 위한 다면 100배 넘는 돈에 22%의 기타소득세를 추가로 과세하는 것이나 없애라. 한경주에 10만원 이하를 준수하면 모든게 해결되는가.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잘 지키고 있는 사항을 뭘 어쩌라고 동영상 앞에다 틀어대는가.
한경주에 얼마를 베팅하는 것은 경마팬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개인의 베팅에 대해 사감위와 마사회가 이래라저래라 할 사항이 아니다. 더구나 동영상 앞에다 독재정권시절에나 가능했던 홍보문구를 넣어 효과를 본다고 생각하는가. 오히려 동영상 볼 때마다 사람들이 짜증을 내 역효과만 날 것이다. 하루빨리 동영상 볼 때마다 성가신 홍보문구를 없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