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훈 기수 인터뷰

  • 운영자 | 2017-02-09 18:50
  • 조회수2938추천0
<하정훈 기수 인터뷰> 
나는 폭풍이 두렵지 않다.
나의 배로 항해하는 법을 배우고 있으니까.




◆ 최근 컨디션은 어떤가. 
 항상 비슷한 것 같다. 아주 좋지도 아주 나쁘지도 않은 정도이다. 주 단위로 경마의 패턴이 흘러가다보니 성적이 좋았던 주는 컨디션이 좀 나아지고 성적이 좋지 않았던 주는 컨디션이 조금 하락하는 만큼의 차이는 있다. 처음 기수로 데뷔했을 당시에 신입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아 조급해하고 서둘렀었다면 지금은 많이 차분해졌고 하나하나 단계별로 나아가려는 마음가짐이다. 

 경마 기수라는 직업이 몸으로 하는 운동 선수이지만 정신적인 단련이 무엇보다 중요하단 것을 알게 되었다. 슬럼프에 빠지지 않도록 기분 전환이라던지 정신 무장을 틈틈히 하고 있어 대체로 나쁘지 않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 소속조를 54조로 옮겼다. 마방 분위기는.
 2015년에 기수로 데뷔하면서 41조와 계약을 맺고 활동했다. 일년반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배움을 주신 마방이다. 경마의 시스템이 돌아가는 전반적인 사항들에 대해 빠른 적응을 할 수 있도록 세세하게 가르쳐 주셨다. 각 마방마다 고유의 특징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많은 경험을 쌓고 싶었다.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관리사형의 도움으로 54조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41조도 마찬가지이고 54조도 조교사님이나 마방 식구들의 친절함은 비할데가 없는 것 같다. 가끔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 해주신다. 41조에 있을때 54조의 마필에 기승하며 성적이 좋았던 시기가 있었고 54조로 옮기면서 몇달동안 기승을 해왔지만 설레임과 기대감은 계속 되고 있다. 특히 54조 관리사형 중에 경마 교육원부터 친하게 지내는 형이 한분 계시다. 교육원때도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54조에 와서도 가장 친하고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54조 조교사님은 전적으로 믿어주신다. 신뢰감이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담감이 자리잡고 있다.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더욱 열심히 하려고 한다. 끊임없이 노력하다보면 기대에 부응하는 기수가 되어있을 것이다.        





◆ 만 2년 정도 기수생활을 해보니 소감이 어떤가. 
 아버지의 사업때문에 미얀마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친구들이 모두 외국 사람이다. 한국에 들어온지 9년정도 되었는데 원하던 기수가 될 수 있었다. 경마 기수가 된 것 자체만으로도 한가지 꿈을 이룬 셈이다. 미얀마의 친구들과 자주 이메일을 주고 받고 통화도 가끔 하고 있지만 모두들 취업난 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정 형편도 좋고 스펙이 좋은 친구들인데도 불구하고 현재 세계적으로 취업이 어렵다고 하더라. 이와중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독립을 한 나는 친구들 중에서는 나름 잘 나가는 중이라고 하더라. 그 이야기를 들으니 기수에 대한 자부심이 더욱 커졌다.

 기수라는 직업을 선택하며 꿈을 이어가고 있어 뿌듯하다. 하지만 데뷔초와 마음가짐은 조금 달라졌다. 미얀마에서부터 승마를 오래 해와서 경주마 기승에 대한 자신이 있었고 성적에 대한 포부가 컸었다. 그런데 실제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었다. 생각처럼 경주가 흘러가지 않았다. 실전에서의 변수가 너무나 많았다. 거기에다가 부상이 겹치면서 자신감은 점점 결여되기 시작했다. 

 만 2년의 기수 생활을 하면서 느낀점이 많다. 잘못된 마음가짐 부터 바로 잡았고 경주마 기승에 있어서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승부욕과 서두르는 것과의 명백한 차이를 잘 구별해야 한다. 아직 멀었지만 조금씩 알아가는 것 같다. 무엇이든 한단계씩 차근차근 길을 탄탄하게 만들면서 나아가야 되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 잦은 부상으로 짧지만 쉬는 기간이 늘었다. 얼마전에도 부상으로 쉬었는데.
 아직까지 큰 부상은 없었지만 잔부상이 많았다. 서둘렀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유를 가지고 노력하다보면 앞으로는 점점 부상이 줄어들 듯 보인다. 얼마전 당했던 부상은 49조의 '영원한순간'의 연습주행을 받으려 했던때였다. 발주기 안에서 상당히 예민한 마필이었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게이트가 열리면 괜찮은데 그날따라 다른 마필 한 두를 더 기다리면서 요동을 쳤고 기립 후 내려오며 내 발을 발주기 기둥에 내리쳤다. 연습주행은 중지 되었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현재는 모든 부상이 완치된 상태이다.

 큰 부상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긴 한데 희한하게도 부상 당한 곳을 또 다친다. 낙마를 하더라도 똑같은 다리와 똑같은 발목이 부상이고 손가락을 접질러도 같은 손가락만 접질른다. 얼마전 부상은 복숭아뼈 였는데 벌써 세번째의 타박상이다. 조심한다고 조심하는데 경주마에 기승만 하면 모든 주의를 잊게 되고 경주마와 달릴 생각만 든다. 나에게 천직인 듯 하다.     





◆ 본인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고 들었다. 
 미얀마에서 학교를 다닐때는 상당히 긍정적인 학생이었다. 한국으로 들어오고 기수의 꿈을 펼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부터 조금씩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소극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편이라 혼자서 꿍하고 있었다. 교육원에서 친해진 동료들이 아니었다면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항상 달고 다녔을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해소 되진 않았고 스트레스와 부정적인 마인드가 합쳐지자 하루하루 버티기가 벅찼다. 

 어느날 영국으로 해외 연수를 가게 되었고 2달을 머물렀다. 새벽조교를 시작하기 전 영국의 관리사 한분이 고함을 지르고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화가 났나 싶어 조심스레 물어봤더니 자신만의 기합을 넣는 것이라는 답변이었다. 그 말이 각인되어 기수로 데뷔하고 새벽조교를 시작할때 모든분들께 큰 소리로 인사를 하면서 나 자신만의 기합을 넣기 시작했고 스트레스까지 풀리는 것을 느꼈다. 

 어려서부터 사람을 대할때 모든것의 기본은 인사라고 배웠다. 인사를 큰 소리로 하면서 듣는 사람도 활기차고 나 자신의 기합과 스트레스까지 풀린다면 더할 나위없이 최고의 방법이 아닐까 한다.    





◆ 지금까지 기승한 마필들 중 기억에 남는 마필이 있다면. 
 기억에 남는 마필은 상당히 많다. 고마운 마필과 아쉬운 마필, 그리고 착하고 귀여운 마필들까지. 최근 기승한 마필부터 한 두씩 말씀 드리고자 한다. 

 먼저 작년 목표 성적이었던 20승을 함께 해 준 54조의 '문아일킹'이다. 이현종기수가 기승을 했어야 했지만 당일 부상으로 인해 기수 변경이 되었다. 그날따라 불량주로라서 선행형 마필들의 득세였다. 운이 좋아 변경된 마필로 주로의 영향을 받아 20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9조의 '원더볼트'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처음 기승을 해봤을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등급의 강자가 이런 느낌이구나 하는 것과 똑똑한 마필과의 호흡이 노하우를 쌓아가는 과정에서 성과를 보여줬다. 직전경주는 순간적인 판단미스가 있어 너무 아쉬운 경주였다. '원더볼트'는 강한 마필이다. 

 가장 기억에 남으면서 제일 기분이 좋았던 마필은 15조의 '속보왕자'이다. 지난해 7월 처음 '속보왕자'에 기승할 기회가 있었다. 한동안 인기마필에 기승하면서 기대만큼의 성적을 보여드리지 못해 속이 많이 상했고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다. 마침 '속보왕자'를 만났고 지난 동영상과 조교를 통해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당시 51kg에 기승할 수 있었던 기수가 없던터라 기회가 찾아 온 것이었다. 

 '속보왕자'는 발주가 눈에 띄게 빠른 편이 아니었고 모래에 대한 민감한 반응도 있었다. 나름의 작전을 세웠다. 외곽 게이트를 배정 받았고 발주 이후의 가속력과 탄력이 좋은 마필이라 초반에 무조건 몰고 나가서 앞에 붙이리라 마음먹었다. 작전이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강한 상대를 만났음에도 '속보왕자'는 잘 뛰어주었다. 그때의 1승은 나에게 큰 의미였고 안도이자 희망이었다. 지금은 '속보왕자'에 기승하지 않고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마필이라 아직도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는 고마운 마필이다.  

 지금부터 딱 1년전 2016년의 포문을 열고 새벽조교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준 고마운 마필이 또 한두 있다. 49조의 '통일대박'이다. 워낙 악벽이 심한 마필이라 새벽조교시 힘들어서 진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큰 기대도 하지않았고 이렇게 힘들게 새벽조교를 한다고 과연 이 마필이 실전에서 뛰어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막상 조교를 공들이고 나니 '통일대박'은 실전에서 그야말로 대박처럼 뛰었다. 새벽조교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알았던 시기이다.          
     
 21조의 '구만석'은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마필이다. 미리 기승 선약이 되었던 마필은 아니었다. 출마투표 당일날 기승 기수가 없어 나한테까지 기회가 찾아왔다. 연속적인 입상을 기록했고 직전경주는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마필이다. 고마운 마필들이다.  





◆ 차후 기대가 되는 마필은. 
 올해를 기대해도 좋은 마필이 몇 두 있는데 그중에서 54조의 '뮤지니'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항상 자기 걸음을 꾸준히 뛰어주는 마필이고 더 나올 걸음 많은 기대 마필이다. 직전경주는 3등급 승급전이었다. 선행을 나갔지만 경합이 치열했고 종반 탄력이 죽고 있었는데 워낙 근성이 좋은 마필이라 끝까지 버텨내며 2착을 지켰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20승을 함께 했던 54조의 '문아일킹'도 어린 마필이라 앞으로의 성장세가 기대된다. 아직은 거리 적성이 길지 않지만 직전경주처럼 주로와 편성의 운이 따라준다면 단거리에서는 해볼만한 마필이다. 앞으로의 성장을 지켜 볼 필요가 있다. 이외에도 기대되는 어린 마필들이 있는데 점차 성장을 지켜보면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다.     





◆ 앞으로 기수로서 계획이나 목표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었었다. 고국이지만 사람들도 환경도 모두 낯설었다. 그럴때마다 주위 분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고 그 고마움을 평생 잊지 않을 생각이다. 특히 교육원에서 한국말이 서툴어 고민하고 있을때 서승운기수의 조언으로 군대를 다녀오며 생각도 잘 정리하고 숙달된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기수 데뷔하면서 유난히 적응하지 못했던 나에게 송재철기수는 열일 제쳐두고 많은 도움을 준 동료이다. 상대마 분석에 재미를 붙이게 해 준 박현우기수와는 매일매일 상의하고 토론한다. 

 말 타는게 좋아 기수의 꿈을 키웠지만 중도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았다. 그런 시기마다 꿈을 이어가도록 지지해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것은 무척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의 목표는 나 역시 동료나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기수로 성장하고 싶다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며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기수가 될 것이다. 특히 최범현기수 처럼 힘든 시기때도 항상 밝게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맞이하는 기수가 되고 싶다. 원하는 기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검빛팬들에게 한마디. 
 인기마에 기승하는 기회가 많았었는데 긴장을 많이 해서 그런지 실망을 안겨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불만족스러운 경주를 치르고 나면 힘이 빠지고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우울해진다. 하지만 새해가 밝았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 성적이 좋든 좋지 않든 팬분들의 응원은 큰 도움이 된다. 당장 이번주부터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드린다. 

 검빛경마 많이 사랑해주시고 올 한해 뜻 하신바 꼭 이루시길 바라겠다. 빨리 봄이 찾아와서 많은 분들이 경마공원에 놀러 오셨으면 좋겠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란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