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주히 움직이는 꿀벌은 슬퍼할 틈이 없다.
서울로 이적한지 1년 3개월이 되었다. 요즘 컨디션은 어떤가.
서울에서의 생활은 이제 적응을 마쳤다. 나에게 서울에서의 기수 생활은 마지막 기회이다. 하지만 기수 적응 기간을 거치고 가족들의 거취 문제 등 여러가지 정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1년 3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적응에만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기회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아직은 과정이기 때문에 준비된 기수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 몸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컨디션은 아주 좋다. 1년동안 혼자서 생활을 하다가 얼마전 아내와 두 아이들이 서울로 이사를 오면서 밥도 챙겨주고 두 아이의 얼굴을 매일 보니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컨디션이 좋아졌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가족이 있다는 것은 큰 의지가 된다. 나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기수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도 지금까지 믿고 함께 해주고 있다. 너무나 고맙다.
아직은 기승 기회가 많지 않다.
부산에서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다부지게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아직은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고 있다. 자존심은 버린지 오래 되었다. 기승 두수를 늘리기 위해 새벽 조교가 없는 날도 각 마방을 돌아 다니며 인사를 드린다. 경주 기승 두수가 아니더라도 일단은 조교 두수만이라도 늘려서 꾸준히 경주로에 나와야 한다. 부산에서의 생활처럼 변해갈까봐 자꾸 불안감이 커지지만 이대로 멈춰서는 안된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배는 정박해 있는 배다. 그런데 항해하지 않는 배는 더이상 배가 아니다. 나는 누가 뭐라해도 기수이다. 가장 안전한 기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동료 기수들과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입장에 차이가 있지만 경마의 꽃인 진짜 기수에 다시한번 도전하고 있다.
부진한 마필이라도 기승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경주 기승이 아니고 새벽 조교의 기회를 주시기만 해도 감사하다. 아무리 더 나올 걸음이 없거나 하락세인 마필들도 꾸준히 정성을 들여 할수 있다라고 마음 먹으면 조금씩이라도 걸음이 나아진다.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성적면에서도 상승한다.
어떻게 보면 지금 현재 나의 입장이 부진형 마필들을 조금이라도 전력 상승 시키는데 가장 유리한 것 같다. 조교 두수가 많거나 바쁜 기승자들은 서둘러서 일을 끝내야하지만 기승 두수나 조교 두수가 적은 나에게 새벽조교의 한 두 마필은 모든 정성과 애정을 집중해서 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맡겨만 주신다면 어떤 마필이든 현재보다 나아진 결과를 안겨드릴 자신이 있다.
체력이 상당히 좋은 듯 하다.
선천적으로 어렸을적 부터 체력은 좋은 편이었다. 꾸준히 관리까지 해왔으니 체력만큼은 나이가 들어도 뒤쳐지지 않을 것이다. 기초체력 단련을 위해 부산에서 빠짐없이 해왔던 등산과 산악 구보를 서울에서도 이어가고 있다. 고민이 있을때면 산에 올라가 마음의 평정을 되찾곤 했었는데 그 습관이 이어져 10년째 산행을 해왔다. 당연히 체력이 좋을 수 밖에 없다.
경마날인 주말에 경주에 기승할 마필이 없어 산행을 나서는 경우가 있다. 자괴감이 들어 경마장에 있을 수 없는 날이고 산을 뛰면 그나마 기분이 좀 괜찮아진다. 언제일지 모르는 기승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체력 단련을 해두는 것이기도 하다.
하루에 한 두라도 경주에 기승하는 기회가 올때는 항상 힘이 남는다. 기승하는 경주마의 모든 능력을 이끌어 내다보면 기승자도 함께 지치기 마련인데 기승 두수가 적다보니 한 두 기승하고 나면 오히려 힘이 더욱 넘쳐 주체를 하지 못한다. 경주 기승후에는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데 돌아가기가 싫어진다. 부족하다. 지쳐 쓰러지도록 경주에 출전해보고 싶다. 기승할 수 있는 힘은 남아돌고 넘쳐나는데 힘을 쓸 수가 없다.
이런것이 목마름인가 보다. 당장은 해소할 수 없는 갈증이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다보면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조교사님들이나 마주님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확률 높은 선택. 하지만 경주마들 각자 사람처럼 전부 성격이 다르다. 호흡이 잘 맞는 기수와 경주마가 있는 것이다. 또한 한두번이 아닌 조금씩 나아지는 기미가 있다면 조금만 더 꾸준한 기회를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나 자신의 준비가 먼저 이겠지만 준비는 충분히 되어있다.
경주 기승까지는 어렵더라도 새벽 조교만의 기회가 온다면 열의와 성의를 다할것이다.
기승한 마필 중 기억에 남는 마필이 있다면.
많은 두수의 기승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승 했던 모든 마필의 성격과 특성을 잘 알고 있다. 전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가장 먼저 말씀 드리고 싶은 마필은 13조의 '후즈퍼펙트'이다. 지금은 기승하지 못하지만 가장 손에 잘 들어오는 마필이다. 강한 상대를 만났을때도 순위권을 기록할만큼 기본 근성이 좋다. 6세의 마필이지만 아직은 하락세를 평가하기에는 이르다.
최근 기승한 마필들 중에는 38조의 '탄성연발'이 애착이 간다. 1년 정도를 꾸준히 기승해왔다. 능력이 월등한 마필은 아니지만 농땡이도 피지 않고 항상 열심히 뛰어준다. 나를 보는 듯 하다. 상태도 항상 좋고 경주만 되면 사력을 다해 뛰지는데도 눈에 띄는 성적을 보이지 못한다. 지난 겨울에 우승을 차지한 경험이 있다. 앞선 마필들이 경합으로 무너지면서 마치 모세의기적 처럼 진로가 열렸다. 추입 우승의 짜릿함을 오랫만에 느낄 수 있는 경주였다.
얼마전에 기승했던 12조의 '재규어퀸'은 조교하기가 까다로운 마필이다. 성깔이 있어 한번에 확 뛰고 지친다. 한번에 쓰는 힘을 잘 분배해서 나누어 쓸 수 있다면 나아진 성적이 가능해 보인다. 그런 순치가 조교에서 필요한 것이다. 당장의 큰 변화는 힘들겠지만 조금씩이라도 확실히 나아질 것이다.
38조의 '무패마마'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성적을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직전경주 출전하기 전 상태가 상당히 좋았었다. 그런데 출마 등록한 마필들이 많아 출마 투표에서 떨어졌다. 한주가 미뤄졌고 컨디션은 다운되었다. 아쉬웠지만 정성을 다한다면 컨디션은 다시 올라 올 것이다.
38조의 '더블와이'는 경주 경험을 쌓으면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마필이다. 최근 중에는 직전경주 출전 당시의 상태가 가장 좋았다. 경주 중 위험한 상황이 연출 될 수 있어 살짝 양보를 했는데 그것때문에 아쉽게 5착을 기록했다. 좀 더 나은 성적이 가능했을 경주였다. 하지만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고 가능성을 검증 받았다.
이외에도 부진형 마필을 정성들여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내고 실전에서 가능성을 보이면 여지없이 기수 변경을 하신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래도 조금만 더 믿고 맡겨 주셨으면 좋겠다. 하다못해 조교의 기회라도 주셨으면 좋겠다. 단번에 변하는 경주마는 없다. 그리고 꾸준히 정성을 다했을때 능력의 한계는 있을지언정 변하지 않는 경주마도 없다.
앞으로 기수로서 계획이나 목표는.
장황한 계획이나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의 목표인 기승 두수를 늘리는 것 뿐이다. 아니 새벽 조교 두수를 늘리는 것이다. 새벽 조교가 없는 날도 있다. 그날 마저도 습관적으로 새벽에 출근을 한다. 각 마방을 돌아다니거나 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안타깝다.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있다.
어디가서 으스대거나 허세를 부리는 성격이 되질 못한다. 하지만 날로 커가는 두 아이들에게 아버지의 직업은 기수란다, 하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침울해 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악순환의 연속은 충분히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노력하기 나름이다.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검빛팬들에게 한마디.
부산과는 다르게 서울에 올라와서 골수팬이 생겼다. 검빛 인터뷰의 위력인지는 몰라도 팬들이 더욱 많아졌다. 예시장부터 이름을 불러주시고 주로 출장시 코너에 이르기까지 듬성듬성 이지만 화이팅을 외쳐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고향 선배인 검빛의 기자님께도 인터뷰를 요청해주셔서 감사드리고 검빛의 팬들께도 소중한 댓글 하나하나 일일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가족들의 응원도 힘이 되지만 경주에 나섰을때 팬들의 응원이야말로 경주의 집중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경주에 출전했을때 비로소 내가 기수라는 느낌을 받는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뛰고 또 뛰겠다. 앞으로도 저를 잊지 말아주시고 힘찬 응원을 계속 이어가 주신다면 좀 더 활기찬 기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날씨가 많이 푸근해졌으니 기분 전환겸 경마공원에 자주 놀러와 주시고 항상 즐거운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라겠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