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마(2) - 연안부두
상대가 없어 강제 은퇴한 ‘연안부두’
한국경마를 호령한 최고의 명마에 대해 각각의 의견이 분분할 수 있겠지만, 누구도 이견을 보이지 않는 한국의 명마 중의 명마는 ‘연안부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안부두’는 상대가 없어 경마장에서 강제로 퇴출되며 한국경마의 전설로 남아 있는 명마다.
‘연안부두’는 1978년 10월 호주에서 태어나 1980년 4월 한국으로 수입돼 경주마로 데뷔했다. 이후 81년부터 82년까지 13연승을 거뒀고, 82년 상금 랭킹 1위에 오르면서 연도대표마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1982년에 개최 시기상 코리안더비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1회 무궁화배 대상경주(5월)를 제패한 뒤 농수산부장관배와 연말 그랑프리 대상경주까지 석권했다. 당시 1년에 대상경주가 4차례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연안부두’는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앞서 달리는 말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강한 근성을 보였으며, 부담중량에 대한 강한 내성을 보이면서 65kg의 높은 부담중량을 짊어지고도 1800m를 1분56초1에 주파하는 괴력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서울경마장의 국산1등급, 외산1등급의 1800m 평균기록이 1분56초대(평균기록은 2분02초0)라는 것을 감안할 때, 30년의 시간차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경마장 50조를 이끌었던 강승영 조교사(은퇴)는 관리사로서 ‘연안부두’를 관리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성격이 차분하고 온순하며 복종심이 강했던 말이었지만, 경주에만 나가면 180도 달라져 무서운 근성을 발휘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연안부두’가 화려한 성적을 보이고 있을 때, 제주도의 삼부목장에서 한국마사회에 국산마를 생산할테니 씨수말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마사회는 당시 뚜렷한 상대가 없어 경주의 흥미를 반감하는 ‘연안부두’를 씨수말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당시 ‘연안부두’를 관리했던 서성석 조교사의 반발이 심했지만, 외산마 신마를 2두 배정해 주는 조건으로 합의가 되면서 결국 ‘연안부두’는 통산 48전 16승 2착 13회라는 성적을 남기고 강제 은퇴를 하게 됐다.
‘연안부두’는 더러브렛계종(부마나 모마의 혈통이 파악되지 않는 경우)이라 요즘 같으면 생산에 투입될 수 없는 경우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규정이 확립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생산에 투입된 ‘연안부두’는 1993년까지 생산활동을 하면서 첫 자마로 ‘반경’(AJC 우승, 1989년)을 시작으로 41두의 자마를 생산했는데, 이 중 25두가 경주마로 활동했으며, 1998년 4월 목골절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주요 자마로는 ‘상승군’, ‘십년지기’, ‘미듬직’, ‘옥관자’, ‘쏜살같이’ 등이 있다.

권순옥 | 경마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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