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마 - (3) ‘포경선’
말 박물관에서 살아 숨쉬는 명마 ‘포경선’

서울경마장에 입장하면 말에 대한 다양한 마문화 관련 자료와 한국 말 역사를 알 수 있는 말박물관이 한 켠에 위치하고 있다. 이 말 박물관에는 우람한 말 박제가 관람객의 눈을 사로잡는데 바로 한국 최대 명마로 불리는 ‘포경선’이다.
‘포경선’은 1980년 11월23일 뉴질랜드에서 태어났다. ‘포경선’의 부마는 프랑스에서 메이슨 리피드 등 3 개 대상경주에서 우승한 ‘댄서 에토일’ 이며 조부는 프랑스의 전설적인 씨수말 ‘리피드’이다.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처음 호주로 건너갔던 ‘포경선’은 1983년 한국으로 수입돼 뚝섬 경마장을 석권하며 80년대 최고의 경주마로 떠올랐다.
1984년 한 해에만 특별경주에서 5차례 우승을 차지했던 ‘포경선’은 1985년 3월부터 그랑프리대회 2회 우승을 포함해 1987년 7월까지 15연승의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이 당시 ‘포경선’의 1800m 최고기록은 1분54초2로, 평균기록에 비해 4∼5초 가량이 빨랐다.
경주로 상태가 모두 불량을 기록할 정도로 시설여건이 좋지 않았던 당시였음에도, ‘포경선’은 연승에 따른 부담중량 증가로 68kg을 짊어지고 당시 최장거리인 2500m에서 51∼54kg을 짊어진 상대마들을 여유 있게 제압했다.
월등한 능력을 자랑한 ‘포경선’은 15연승을 기록하던 기간 중에 무려 13차례나 60kg이상의 부담중량을 짊어져야 했고, 결국 우측다리 부상으로 인해 장기 휴양을 가지게 됐다. 이후 100여일의 치료를 거친 후 ‘포경선’은 68kg의 부담중량으로 16연승 도전에 나섰지만, 58kg의 부담중량으로 출전한 ‘왕방울’에게 1마신차로 패하면서 연승을 마감해야 했다.
또한 다리부상이 재발하면서 그랑프리 3연패에 실패를 했고, 이후 4번의 경주에 더 출전한 뒤 은퇴를 했다. 은퇴할 때까지 ‘포경선’은 25전 20승에 2착 1회로 승률 80%와 복승률 84%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포경선’은 1988년 12월15일 경주로를 떠났는데, 이때 경마역사상 유례가 없던 은퇴식이 열려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물론 현재와는 달리 경마 관계자들만 지켜보는 은퇴식이었지만, ‘포경선’이 당시 한국경마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경주로를 떠난 ‘포경선’은 승마용으로 기수교육원(경마교육원)에 보금자리를 튼 뒤 훈련마로 활동을 하게 된다. 수입 당시부터 거세마였던 까닭에 씨수말로 전환되지 못했던 것이다. 훈련마 생활을 하던 ‘포경선’은 2년여 만에 다리부상이 악화돼 결국 안락사하고 말았다.
한국마사회는 명마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사후 박제로 만들어 말박물관에 전시해 경마팬들이 ‘포경선’의 위업을 되새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권순옥 | 경마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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