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마(4) - 가속도
너무 뛰어나 비운의 주인공이 된 ‘가속도’

코리아컵 국제경주가 서울경마장에서 개최되고, 한국말들이 해외에 나가 경주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과거 일본, 뉴질랜드, 호주 등에서 저가의 경주마를 수입해 명맥을 유지하던 한국경마가 이제는 국산마를 양산해 수출하고, 외국 경주에 출전해 실력을 겨루는 단계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도 세계의 벽은 높지만 한국경마의 성장과정을 되짚어보면 조만간 경마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끼게 한다.
한국경마가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데 밑거름이 된 말들이 바로 한국의 명마들이다. 아직은 대다수가 외국에서 수입한 말들이지만 국산마도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중년 후반을 지내고 있는 경마팬들이라면 최고의 명마로 꼽는 말이 바로 ‘가속도’일 것이다.
암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없어 강제 은퇴를 당할 때까지 13번 경주에 출전해서 1991년 한국마사회장배 대상경주에서 5착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었다.
한국마사회의 기록상에서 ‘가속도’의 성적은 경주일과 마번, 경주종류, 경주거리, 등급, 순위, 기승기수, 부담중량, 경주기록 등은 남아 있지만 세부적인 전개상황 등은 제공되지 않고 있어 아쉬움으로 남지만 패배를 모르는 ‘가속도’의 질주가 어떠했을지 대충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1987년 뉴질랜드에서 태어난 ‘가속도’는 1990년 4월 한국으로 수입되었고, 그 해 6월 30일 데뷔전을 시작으로 매경주 우승을 승급을 기록하면서 1991년 8월 25일 경주까지 11연승을 기록했다. 이후 그 해 10월 20일에 개최된 한국마사회장배 대상경주에서 이전 경주보다 무려 34kg의 체중(당시 439kg)이 빠진 가운데 5착에 그치는 불의의 일격을 당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그랑프리(12월 15일) 대상경주에서 정상체중(481kg)을 회복하면서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무적의 활약을 펼친 ‘가속도’는 필적할만한 상대가 없다는 이유로 1992년 강제로 은퇴를 하게 됐다. ‘가속도’의 은퇴식은 마사회에서 장내 방송으로 중계를 했고, 수많은 경마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은퇴식과 은퇴질주를 가졌다.
화려한 명문혈통을 가진 강제 은퇴 이후 ‘가속도’는 씨암말로 제2의 인생을 가지게 된다.
고조부가 ‘네이티브댄서’(22전 21승)였으며, 증조부는 ‘레이서네이티브’(4전 4승), 모계쪽 외고조부는 ‘카운트플리트’(1940년 미국 삼관마)였다. 또한 ‘가속도’의 조부는 ‘알리다’이다.
‘알리다’는 현역 당시 26전 14승을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보였지만 강력한 라이벌인 ‘엄퍼드’(1978년 미국 삼관마)의 명성에 눌려 2인자로 불렸다. 이후 종모마로 변신한 ‘알리다’는 수많은 준마를 생산하며 종모마로서는 ‘엄퍼드’를 제압하는 성과를 보였다.
뛰어난 혈통에도 불구하고 ‘가속도’가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은 부마인 ‘언개그먼트’의 영향이 컸다. ‘언개그먼트’는 경주마 활동 없이 곧바로 씨수말로 활동을 하면서 유명한 씨수말과 교배를 할 수 없었고, 이런 연유로 ‘가속도’가 싼값에 한국까지 오게 된 것이다.
강제 은퇴 이후 ‘가속도’는 제주의 태흥목장에서 1992년부터 2009년까지 씨암말로 활동을 했고, 2014년 폐사됐다. 씨암말로 활동을 하면서 ‘가속왕’(1군),‘가속질주’(1군), ‘허니비’(2군) ‘가속세대’(2군), ‘더블린댄서’(3군) 등의 주요자마를 배출했다.

권순옥 | 경마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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