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하루

  • 운영자 | 2010-09-01 09:49
  • 조회수1342추천0



새벽이다.

잠깐 잠들었다 싶은데 사람들 출근하는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또 하루가 시작 되는가 보다.

어제 야식을 조금 밖에 안 먹었더니만 조금 출출하다. 그런데 운동을 해야만 밥을 주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난 말(馬)이다. 말 그대로 말이다. 누워서 잘 자는 말이고 서서도 잔다. 사람들은 우리가 서서 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물론 서서도 잔다.

좀 있으면 저녁 내내 내가 퍼질러 놓은 배설물을 치워주기 위해 사람이 올 것이다. 관리사라고 부른다.

고개를 내밀고 있으니 한 관리사가 지나가면서 "잘잤냐, 말들아~?" 하면서 지나간다. 마치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러셀크로우가 지나갈 때 처럼

사람들이 하나 둘 기립하던 그 기분을 느끼고자 하듯이... 그럼 우리가 자앙군~~하면서 고개라도 숙일 줄 알았냐? 히힝...

왜 마방을 살짝 훑어보는지 알고 있다. 간밤에 별일 없었나 살펴 보는 거다. 방이 좁아서 가끔 누웠다가 반대로 뒤집을 때 벽에 걸려서 못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데

그걸 '네가리'라고 한단다. 가끔 나도 네가리를 하는데 넘어져있으면 나도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기가 차다.

"야 절루좀 가봐!"

아니, 남의 방에 들어왔으면 얼릉 치우고 나갈 것이지 일루가라 절루가라 왠 잔소리람... 여튼 배설물을 치워주고 새로운 이불을 깔아주니 고맙긴 하다.

조금 있으니 내 입에 재갈을 물리는 사람이 들어왔다. 나원참... 이 깜깜한 새벽에 왜들 말을 못살게 굴고 난리들이냐...걍 낮에 한가 할때 할 것이지...

사람들이 새벽에 난리 인것은 우리 같은 말은 새벽에 가장 심적으로 안정적이라서 그런 거란다. 흠...뭐... 내가 또 한 성질 하기 때문에 피곤하긴 하겠지...

'어이 사람~~ 좀 천천히 걷지' 아직 잠도 안 깼는데 날 운동시킨다고 빨리 걸으란다. 내말 들은거야 만거야...

한 이십 분 지났나...내 등짝에 안장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에 뭘 올릴 때 그게 싫어서 난리 부르스를 춘 적이 있었다.

들판을 뛰놀면서 자유롭게 지내던 내게 그것은 구속이었다. "난~~~자유인이라구!!! 아니, 자유마라구~~!!!"

그런데 몇 대 맞으니 그게 엄청 편해 지더라구...헤헤 몸에 딱맞는 맞춤복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사람이 올라 타는 것도 역시 몇 대 맞으니 ㅎ 꼭 무슨 바벨 들고 운동하는 느낌도 나고, 뭐 괜찮던데...ㅋ

좀 너른 벌판을 몇 바퀴 달리고 나니 기분도 좋고 땀도 흘리니 운동도 제대로 한것 같다. "오라~오라~" 내 등에 탄 사람이 이젠 퇴근하자고 한다.

바로 보이는 출구로 냅다 달려갔다. 이제 출근하는 녀석들이 여럿 보인다. 이제 마무리 운동하고 씻고 난 후에 식사시간을 기다리면 된다.

난 숫말 이었다. 왜 ‘이었다’라고 하냐면 지금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어느 모처에 끌려가서 난 거세 당했다. 가면서 뽕을 맞네 어쩌네 하는 소리를 들었다. 뽕? 음…그… 어느 날 그 물질이 발견되었을 때 피로가 뽕하고 사라진다 해서 붙여진 ‘히…로…뽕…?’ 이 아니고 주사한대 맞으면 몽롱해지는 것만 비슷한 근육이완제 같은 거 아닌가? 여하튼 난 몽롱한 상태에서 거시기에 붕대를 감고는 이불 없는 내 방에 들어와서 고통스런 몇 날을 보냈다.

이불이 왜 없냐고? 누워서 구르면 안그래도 부어있는데 터지면 마이 아파~~

난 잘못한 게 없다. 나를 이렇게 한 이유는 어느 날 훈련을 나갔을 때 몇몇 암말들이 보여서 나의 본능에 의해 친하게 지내기 위한 아주아주 약간의 행동들 때문이었다. 난 달려갔다. 사람이 위에 있건 없건 내게 보이는 것은 암말의 멋진 엉덩이 뿐이었으니까… 몰론 몇대 맞긴했다. 그런데 내 본능을 제어하기엔 견딜만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도 모르게 흉한 목소리가 나오긴 했다. “히힝~~푸르르…끄억끄억~~”아 이거 글로 쓰려니 힘들군…여하튼 사람이 듣기엔 이게 미쳤나 싶을 만한 괴성이긴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난 거세 당했다. 경주에 지장을 줄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런 드런 세상~~~

정말 그날 이후로 신기하게도 암말에 대한 관심이 아예 없어졌다.

그렇다고 숫 말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 건 아니다.

헉!!!아니, 내가 지금 무슨 말을…허거걱~~~!!!!

블로크백 마운틴에서 사람들은 남자들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 사람들이 탄 말이 주인공 이었다는거 아는 사람 별로 없다. ㅋㅋㅋ



그건 그렇고 아침을 먹는 시간이다. 그런데 메뉴가 별로다. 난 말인데 사람으로 착각하는거 아닌가? 사료 같은 건 그나마 먹을 만 하다. 풀 같은 것도 싱싱하진 않지만 그나마 안먹으면 안줄지도 모르니까 먹긴 먹는다. 근데 먼지 많은데 물 좀 뿌려주는 센스도 없구…뭔 가루가 이렇게 많아!!! 내가 염소냐 암거나 막 먹고? 이거 이 식당 못 쓰겠구만…

야 주방장 불러와!!! 나 오늘 이거 안 먹는다. 흠…마침 지나가네…

나 이거 오늘 안먹을거니까 싱싱한 걸로 좀 줘봐 설탕 버무린 당근같은거…

말: 히히힝~~

관리사:걍 먹어 시키야!!!

어? 알아듣네?

나 이거 오늘 안먹으니까 다른걸로 갖다주던지 맘대로 해 . 나 안먹으면 누가 손해냐 ? 경주? 안뛰고 말어..이거 왜이래…나도 성질 있다고…

말:히히힝~~

관리사:저게 밥도 안먹고 미쳤나…뭣도 없는게…

뭐? 아니 여기서 그 말이 왜 나와…뭐도 없다고? 이런…말 미치는 꼴 보고 싶어?

관리사:밥 안 먹으면 밥통 뺀다…

그런 말 있잖아… 내가 지금 먹지 않으면 평생 오늘 아침 밥은 먹지 못한다. 그래서 먹어준다.

성격 좋은 말 만나서 다행인줄 알아라~~~히히힝

아침밥을 먹으니 따스한 햇살에 졸립다. 그런데…이건 무슨 소리지???

창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저 멀리 말이 한 마리 달려오고 있었다. 위엔 사람도 없었고 옆에서 끌어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냅다 달리고 있었다.

우린 환호성을 질렀다. 달려~~달려~~자유를 향해~~!!!! 히히힝!!!! 가끔 있는 우리의 일탈이다.

“근데 어디로 가냐?”

“몰라… 그냥 가는거야…”

“그럼 대충달리다가 잡혀줘라…사람들 고생한다”

“알았어 나도 그럴라고 ㅋㅋ”

우리가 텔레파시로 이런 대화 나누는 거 사람들은 모를거다.ㅋ 이제 좀 자야지 새벽부터 일어나서 돌아다녔더니만 피곤하군…

조금 있으니 점심을 준다. 사람들은 다시 오침에 빠진다. 새벽부터 같이 설쳤으니 피곤하겠지…

오후가 되니 놀이운동 시켜준다고 데리고 나갔다. 근데 놀이운동은 혼자해야 재밌지 사람이랑 같이 걸으면 그게 재미가 별로 없거든…

난 눈이 옆에 달려있어서 내 엉덩이 근처를 제외하면 못보는 공간이 별로 없다. 보이는것이 많으니 사방에서 뭐가 나타나면 일단 놀란다. 어제 못본 것이 저기 있으면 일단 그것도 이상하게 생각을 하고 경계를 한다. 보이는 것이 많은 만큼 생각도 많고 이래저래 난 피곤하다.

사자 같은 동물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 때문에 본능에 의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면 일단 뒷발로 찰 준비를 하는데 사람들은 내 뒤로 올땐 조심하길…참…근데 사자가 뭐지?

난 본적이 없어서 말야…ㅎㅎ

어느덧 하루가 지나간다. 어두워지면 창문을 닫을 것이고 다시 긴긴밤을 지낼 것이다.

그러다가 야식을 주는 소리에 잠깐 소란해 질것이며 그리고 얼마 뒤엔 불이 꺼지게 되고 어둠 속에서 자게되는 시간이 며칠 지나면 경주를 하게 된다. 아직도 떨리는 경주…

그러나 나의 본능은 달리는 것이다. 텅!하는 소리에 저 넓고 긴 벌판을 향해 달릴것이다.

이 밤에 어쩌면 나의 꿈에서도 달릴 것이다. 꿈에서도 나의 멋진 모습을 또 그안에서 꿈꾸며…


출처:유주용님의 네이버블로그 "부산경남경마공원마필관리사"
(http://blog.naver.com/akomag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