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마애]권력과 명예의 상징, 마주

  • 운영자 | 2010-11-24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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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는 말(馬)과 함께 해왔다.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포세이돈과 하이데스의 동반자로서 시작된 말의 상징성은 남성, 절대권력, 지배계급의 힘을 뜻한다.
말과 정치, 권력, 전쟁, 영토의 확장, 생활문화의 발전 등 과거 역사 속에서 말은 인류문명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으며, 마정사는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역사적 아이콘이었다.
말의 소유자인 마주들은 역사 창조의 주역이었으며, 고대 전쟁에서는 말이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큰 몫을 차지했다.
칭기즈칸의 몽골이 중동과 동유럽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저력 역시 기동력에서 나왔다. 몽골군의 60%는 갑옷을 입지 않고 투구만 쓴 채 말을 타고 질주했다. 이에 비해 페르시아나 유럽의 보병은 수십㎏에 달하는 중무장을 했으니 몽골군의 말발굽에 짓밟힐 수밖에 없었다. 불과 20여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몽골군이 200만명이 넘는 상대를 손쉽게 제압했다.



중세로 넘어와서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고 중세 유럽의 왕이나 귀족들은 전쟁에 대비해 경쟁적으로 군마(軍馬)를 육성했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지배 계층은 과연 누구의 말이 가장 뛰어난지 알고 싶어 했고, 왕과 귀족들에 의해 경마가 중세 최고의 엔터테인먼트(King of Sports)가 된 것이다.
이와 같이 경마의 탄생과 역사는 보다 빠른 말을 탄생시키기 위한 인간의 열망을 발현시키는 과정에서 비롯되었기에 마주계층의 출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크롬웰의 검소한 공화주의 바람이 불기 전까지 영국은 왕실 중심의 문화와 예술이 번창하였다. 영국 왕실이 경마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근대 경마의 종가(宗家)로 자리를 굳히는 것 역시 이 시기의 일이다.
특히, 찰스 1세의 아버지인 제임스 1세는 말과 승마술, 경마의 열렬한 팬이었으며, 그의 강력한 후원 아래 귀족과 일부 왕족만이 즐기던 후원(後園)의 스포츠에서 근대시민사회의 품으로 활짝 안기게 된다.



제임스 1세가 뉴마켓(Newmarket) 지역에 종마장과 경주트랙 등을 건설하면서, 영국은 경마의 중흥기에 접어들었으며, 찰스 1세는 아버지의 이러한 취향과 노력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청교도 혁명이 일어나고 근대 시민사회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경마 중흥을 위해 힘을 쏟아 부은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의 존재는 잠시 잊혀 졌지만, 1780년 엡섬(Epsom)에서 세계 최초로 더비(Derby)가 열리면서 영국은 경마 종주국으로서의 위치를 공고히 했으며, 왕실과 경마의 끈끈한 관계도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 됐다.
12세기부터 잉글랜드 귀족과 왕족의 스포츠로 시작된 경마는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를 거쳐 17세기에 경마광인 찰스 2세 국왕이 뉴마켓을 경마의 고향으로 만들면서 지금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영국에서 경마는 돈을 걸고 하는 베팅의 의미보다는 신사의 나라를 대표할만한 사교의 장이자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대중적인 스포츠로서의 의미가 더 크며, 마주와 기수, 조교사들은 자신들의 지위와 일에 최고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경마문화는 왕실로부터 시작된 경마의 역사에서 비롯되었으며, 국민들의 경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영국 왕실, 즉, 마주에 대한 존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하여 마주는 부와 권력, 명예와 자긍심, 사회적 존경의 상징이 되었으며, 마주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는 그들의 의무가 되었다.


오늘날, 현대경마에서도 영국과 홍콩은 마주중심의 경마를 창출하고 있으며,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마주로 대거 참여하고 있다.
또한 호주와 일본의 마주들 역시 최근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폭을 크게 확대해나가며, 글로벌 리더로서의 마주 간 공감대를 형성해나가고 있다.

출처:강마애님의 "선마선진화의 길, 다시보자, 한국경마!"
(http://blog.naver.com/kangmaae)